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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0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강화길 외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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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 01. 「음복(飮福)」, 강화길

모를 수 있는 권리, 그것을 부여받은 특별한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얼마큼의 사람들이 알까.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하면서도 그 한 사람이 가진 특권을 비밀스럽게, 하지만 더없이 적나라하게 똘똘 뭉쳐 지켜야만 하는 이들을 당신은 과연 아는지. 이해를 구한다는 명목 하의 감정적 착취로 이뤄낸 권리라면 그것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눈물이고 울화 일진 대, 이보다 중한 얘기가 어딨다고 시시하다는 말을…….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 p.9

 

 

 

# 02.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자신이 선 자리에서 가능한 한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외적으로 장애물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나아갈 수 있을지,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하여 때때로 가늠해 보곤 한다. 이 불안의 시간들이 빚어낼 빛의 순간을 그리며. 희원은 지난날의 젊은 여 강사를 떠올린다. 그러고는 비로소 그녀가 했던 말줄임표 뒤의 진심을 깨닫는다. 더불어 이제는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쏘아 올린 빛을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서야만 한다는 사실 역시도. ‘…자기 목소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p.79) 했던 그녀의 말이 그 길의 출발점이 되리라.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희원씨가……” (…)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다음 문장이 어떻게 완성되었을지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어떤 문장이든, 그녀는 내가 자신보다는 나은 경험을 하기를, 자신이 겪었던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자존심이자 힘이었으리라는 생각도 한다. 자신의 조건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겪는 부당함을 인지하면서도 인정은 하지 않으려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그 마음이 그녀를 지켜주었는지도 모른다.    - p.84,85

 

 

 

# 03. 「그런 생활」, 김봉곤

늘 자신과는 평행선을 걷는 엄마, 자신을 두고 한눈을 파는 애인과 함께 하는 그는 지금 ‘그런 생활’ 중이다. 그들 때문에 속이 상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곤 하면서도 결국은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관계 안에서 그런 생활은 비로소 그런 삶을 향해 기꺼이 나아간다. 이유는 오직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그를 사랑하는 까닭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와 화해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사랑법을 나는 존중한다.  우리는 누구라도 저마다의 그런 생활의 나날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꿈인지 생각인지 혼미한 문장-풍경 사이로 여름을 예비하는 작은 잎들이 내 눈앞에서 세차게 흔들렸다. 나는 여름의 춤, 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어쩌면 이것이 이 소설의 제목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제목은 그런 생활이 될 것이며, 그건 내가 바로 그런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썼고, 때로는 그들만이 내 글을 읽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쓰지 않는 동안에도 나는 그런 글을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런 생활을 했다.    - p.151

 

 

 

# 04. 「다른 세계에서도」, 이현석

동생 해수의 뜻밖의 임신은 ‘나’로 하여금 심정적 분란을 가속화한다. 삼 년 먼저 산부인과 전문의가 된 희진의 제안으로 낙태죄 위헌 지지에 대한 사회적 반향을 꾀하는 모임이 차츰 피곤해진 무렵이기도 했다. 같은 목적을 향해 모인 사람들 안에서도 미묘하게 그래서 도무지 간과할 수 없는 저마다의 시선을 목도했고, 그녀가 보기에 그들이 내는 목소리는 어느 것 하나 완전무결해 보이지 않은 까닭이었다. 더욱이 동생이 바라 마지않던 영상의학과 전공의로 뽑혀 창창한 앞날의 목전에 있으면서도 때 이른 임신과 그것을 두고 ‘내는 그냥 행복하고 싶더라.”(p.201)고 갈무리하려는 것, 그것 사이에 놓인 간극 역시도 그녀를 침잠하게 만든다. 서로의 지향점이 다른 행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한마음으로 꿈꾼다면 이전에 없던 다른 세계에 가닿을 수 있을는지, 내 자신에게도 묻고 싶어 진다. 

 

당신이 없는 지금 이곳을 상상합니다. …우리가 나란히 각자의 두 발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말입니다. 당신이 없는 그곳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 다른 세계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분명 굳건할 것임을. 당신이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 p.202

 

 

 

# 05. 「인지 공간」, 김초엽

하나의 규정화 된 제도권이 온 세상인 양 여기는 사람들을 무수히 봐 왔다. 그렇지 못한 존재는 어딘가 모자란, 열등한 이탈자로 보는 시선을 도저히 외면하기 힘든 이유리라.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간에 때때로 가해자가 되기도, 더러는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한 공간에 담을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잘 알면서도…. 어쩐지 나는 이 소설 속 인지 공간이 이렇게 달리 읽혔다. 이 공동체의 무지가 깨우쳐 지기를. 그래서 ‘우리가 인지 공간을 떠나야만 진짜 세계를 직면할 수 있다’(p.218)고 했던 이브의 말이 증명되기를. 제나가 향한 무한한 바깥 세계에 반드시 그 답이 있을 것이니.

 

저 밤하늘에는 별이 너무 많아서 우리의 인지 공간은 저 별들을 모두 담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각자가 저 별들을 나누어 담는다면 총체적인 우주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침내 이 행성 바깥의 우주를 온전히 상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그곳을 향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 p.243

 

 

 

# 06. 「연수」, 장류진

응당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남편의 아침밥을 챙겨야 하는 삶이 정답인 양 강권하는 사회에서 비혼을 결심한 여성의 피로가 묻어난다. 그것은 때로 노골적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너를 위해서’라는 말로 포장된 참견과 훈수이기도 하다. 주연은 그런 그들의 시선과 편견에서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운전연수를 도울 사람을 찾기 위해 지역 맘카페에 가입한다. 그 안에서 남편에 대한 푸념이나 입던 팬티를 중고 거래하는 게시글을 보고 경악하면서도 그곳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에게 운전연수를 받기로 한다. 이 짧은 글은 한 여성의 운전연수 에피소드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적 성취를 이룬 비혼 여성과 자신의 가정을 꾸린 기혼 여성 사이에 흐르는 은근한 대결 구도가 담겨있는 듯도 하다. 그럼에도 결국 – 비록 상호 필요성에 따른 결정이라고 할지라도 – 화해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응원하기도 한다. 몹시도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 p.286

 

 

 

# 07. 「우리〔畜舍〕의 환대」, 장희원

재현과 그의 아내가 멀리 호주의 퍼스에서 지내고 있는 아들 영재를 만나 목격한 어떤 기이한 광경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낯선 공간과 사람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하는 순간의 당혹은 별안간 기존의 관계가 단박에 정리되고, 이전과는 다른 성질의 관계가 새로이 시작되리라는 예감을 하게 한 것이다. 그렇기에 차라리 관계성의 변화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나아가 입때껏 상식이라 믿어온 세계가 전복되었다는 잔혹한 진실을 그 세계의 끝에서 확인한 재현의 절망감은 마침내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p.326)이는 환영으로 치환된다. 그 눈부심 속에서도 구태여 눈을 뜨고자 안간힘 쓰는 그를 바라보면서, 문득 현실보다 더 현실감 넘치는 우리네 삶의 한 찰나를 목격한 것도 같다.

 

그는 눈을 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는 자신이 감히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저 빛 너머의 모습이 눈부시다는 듯 자꾸만 두 눈을 움찔움찔 떨었다.    - p.326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10점
강화길 외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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