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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1

욕구들 | 캐럴라인 냅 |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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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여성은 왜 원하는가

 

 

 

이 세계에서 여성이란 존재가 품는 다양한 욕구들에 대하여 6장에 걸쳐 면밀하게 살핀다. 한 가정의 딸이자 글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직업인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마주한 경험과 취재가 밑바탕 된, 그야말로 사례에 충실한 글들이기에 한층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더욱이 내적 허기에서 발현되는 내면적 관점에서부터 사회∙문화적 나아가 전통적으로 그래 왔던 어떤 흐름에 의한 억압과 제한에 이르기 까지, 여성은 왜 원하는가에 대한 다방면에 걸친 사유가 돋보인다. 여기서 ‘슬픔’의 감정이 모든 욕구를 관통하고 있다는 데에 그녀는 주목한다.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행했던 거식증과의 사투, 그 안에서 철저하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탈피의 좌절과 이 모든 욕구들이 불러오는 공허감과 갈망은 스스로를 통제하고 한편으로는 폭로하기도 하는데, 이는 결국 또 다른 슬픔이란 감정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 악순환의 연결 고리 안에서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어떡해야 할까. 그녀는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마음껏 충족할 만큼, 세상에서 기쁨을 누리고 살아 있음을 마음껏 즐길 만큼 그 사람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 안에 진정한 성배가, 한 여자의 갈망의 핵심이 들어 있다.’(p.51)고 적고 있다. 나는 이 문장이 사백 페이지 가까운 텍스트 안에서 최종적으로 그녀가 끄집어내고 싶었던, 그러니까 모든 여성과 세상을 향해 던지고 싶었던 질문인 동시에 그 자체로 답이기도 함을 곱씹어 보아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슬픔은 통찰에 완강히 저항한다. 나는 불안과 죄책감과 자기혐오의 조각들을 끼워 맞춰 퍼즐을 완성할 수 있고, 어디까지가 문화이며 어디까지가 몸과 자아로부터의 소외인지 깔끔한 선을 그어 구분할 수 있으며, 내 거식증의 역사를 이루는 각각의 조각들에 대한 근원을 이런 순간과 저런 순간으로, 이런 교훈과 저런 메시지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의 저변에 슬픔이 흐르고 있다. 슬픔은 대지처럼 깊이 자리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롭게 떠도는 듯하고, 욕구의 문제를 끌어당겨 거기에 강렬하고 독특한 빛을 비추는 아주 신비로운 힘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모든 개별적 갈망은 그 이글거리는 빛을 받으면 흐릿해져 구별할 수도 없게 된다. 거식증은 나를 이런 슬픔의 감정에서 보호해주지 못했고, 거식증에서 회복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슬픔은 주기적으로 뚜렷한 원인도 없이, 잠이 오지 않는 밤이나 상태가 나쁜 아침 잠에서 깬 첫 순간, 갑작스레 치고 들어오는 공허함과 갈망의 습격으로 제 존재를 알린다. 이 공허함과 갈망은 어떤 특정한 결핍과 관련된 것은 아닌 듯하고, 오히려 바다처럼 더욱 깊은 어떤 허기의 존재를 폭로하는 듯하다. 다른 욕구들은 알고 보면 단지 이 허기의 바다에서 파생되거나 분기된 작은 강과 지류 들로, 어떻게든 결국에는 다시 그 바다로 흘러든다. 이런 감정이 닥쳐올 때면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그 뿌리를 추적하려 해보지만 이런 시도는 성공하지 못한다. 아주 작고도 견고한 종류의 위안만이 이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침대 위 내 옆에 누워 있는 개에게 손을 뻗어 녀석의 발을 손에 쥐고 녀석의 가슴을 긁어주고 개의 깊고 평화로운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 p.319, 320

 

 

 

 

 

욕구들 - 10점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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