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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2

가면의 고백 | 미시마 유키오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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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일상성을 칼로 베어버리는
강인한 낭만주의자가 써내려간
고백문학의 정수

 

 

 

입때껏 만나온 소설 안에서 작가의 자기 고백은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허구적 요소가 보태어지기 마련이지만 대개는 과거 일화를 바탕으로 한 사실적 성격을 띤다. 다만 미시마 유키오 소설의 특이점이 있다면, 가면이라는 수단을 통해 일반적 의미가 지니는 고백을 전복시키고 그 이면의 진실을 구하고자 하는 데에 있어 보인다. 

그는 자신의 출생부터 성인이 된 시점에 이르기까지, 마음 깊숙이 관통하고 있는 무언가를 향한 몰두와 채근의 일화들을 특유의 날카로우면서도 감각적인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스스로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자기 노력인 동시에 본연의 자신에 가닿고자 하는 자기 나름의 탐구의 과정이기도 했을 것이다. 일례로 그는 자기 안에 존재하는 ‘불안’에 대하여 주목한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자란다는 것을 느끼면 언제나 이상하게 예리한 불안이 함께 따라왔다”(p.81)고. 나아가 “미래에 대한 나의 막연한 불안은, 한편으로는 현실을 벗어나는 몽상의 능력을 키움과 동시에 나를 그 몽상으로 달아날 수 있게 해주는 ‘악습’으로 몰아세웠다. 불안이 그것을 시인해주었다”(p.81)고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숙명적으로 자기 안에 내재한 불안을 떠안고 살아가지만, 그 막연하고도 막막한 감정을 그저 순응 혹은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인지하면서도, 그것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까지도 포함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란 존재를 이해해보고자 했다. 더욱이 어떤 상황을 모면하거나 자신이 바라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기 위하여 연기도 마다하지 않으며 때로는 위선적이기까지 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임으로써 보다 자신이란 존재가 지닌 속성, 그 진실에 가닿고자 애쓰기도 하는 식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 소설의 초판 해설을 통해 고백의 본질은 불가능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그는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해서라도 고백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 소기의 목적이 있었으리라.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도를 거듭한 끝에 완성한 『가면의 고백』이 지니는 가치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내 안에서는 무언가 타올랐다. 그곳에 널린 ‘불행’의 행렬이 내게 용기를 주고 힘을 주었다. 나는 혁명이 몰고 오는 극도의 흥분을 이해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던 온갖 것들이 불길에 휩싸이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인간관계가, 애증이, 이성이, 재산이 바로 눈앞에서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때 그들은 불길과 싸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관계와 싸우고 애증과 싸우고 이성과 싸우고 재산과 격투했던 것이다. (…) 거기에서 싸움을 벌인 것은 아마도 전례가 없을 만큼 보편적이며 또한 근본적인 인간의 온갖 조건이었다. 나는 엄청난 연극이 인간의 얼굴에 남기는 피로의 흔적을 그들에게서 보았다. 어떤 뜨거운 확신이 내게 용솟음쳤다. 실로 짧은 순간이었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조건에 대한 나의 불안이 참으로 멋지게 빠져나와 사라지는 것을 나는 느꼈다.    - p.145, 146

 

 

 

 

 

가면의 고백 (무선) - 10점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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