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픔과 고독을 견디며
오늘도 자신만의 길을 걷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
윌리엄 스토너는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이후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거들며 어린 시절을 보내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컬럼비아에 있는 한 농과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영문학 개론을 수강하고 아처 슬론 교수를 만나면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진로에 대한 고민과 고뇌 속에 문학의 길로 접어들어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교수가 된다. 그 사이 결혼하여 딸을 얻게 되고 진정한 사랑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한 여인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삶을 조금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딸에 대한 애정은 지극했으나, 결혼 생활 내내 아내와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고 불륜을 저질렀다. 학교에서는 열정을 가지고 성실하게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교수로서의 지위와 평판은 미미했고, 명예롭지도 못했다. 이제 와병 중인 그는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p.388)
이 물음은 곧바로 나에게로 향했다. 무얼 기대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고…. 사람들은 이따금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기도 하지만 제 삶을 가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고자 분투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그 자체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신성한 과업이라고 인내하면서. 죽음의 문턱에 선 스토너를 통해 그 같은 생각은 한층 확고하게 다가온다. 무엇을 기대했든 인생이란 자기 자신으로 남기 위해 애쓰는 과정,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고. 세간의 눈높이로 평가될 일 역시 아니라고 말이다. 저마다의 인생이 품은 모든 것들을 — 그것이 비록 슬픔과 고통일지라도, — 끌어 안고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찬사 받을 만한 일이지 않은가.
이제 자신은 예순 살이 다 되었으므로 그런 열정이나 사랑의 힘을 초월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초월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 무감각, 무심함, 초연함 밑에 그것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강렬하고 꾸준하게. (…)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詩)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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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 ![]()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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