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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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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이병률 | 달 사랑하고 있는 이들을 향한 시인의 따뜻한 축사 ‘우리는 지난 시간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랑을 해 왔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날은 또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랑을 하길 바라는가. 나를 둘러싼 이 세계, 여기저기에서 피어나고 지는 사랑이란 감정에 대하여 마주하는 일은 근사하고 아름다운 일이면서도 애잔함을 불러일으키는 쓸쓸한 일이기도 했다. 더욱이 지난 몇 년 팬데믹이라는 어둡고 긴 터널 안에서 사람을 몹시도 그리워한 일이 있는 우리에게 사람 없이 산다는 것이, 사랑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황량하게 하는가를 깨우치게도 했으므로 더욱더 소중하게 다가올 수밖에. 혼자가 혼자에게 | 이병률 “왜 혼자냐고요. 괜찮아서요.” 이 세계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일, 나는 그 비결을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 안에서..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 이병률 | 문학동네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집이 비어 있으니 며칠 지내다 가세요’라 건네는 시인의 첫말이 포근하게 다가오는 시집,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바다는 왼쪽 방향이고 슬픔은 집 뒤편에 있’다고 덧붙인 말 안에 스민 지극한 배려가 어수선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애써 외면하고 또 그런 식으로 잊으려 했던 나의 슬픔을 가만히 응시하게 한다. 살피고 보듬게 만든다. 그야말로 시집 자체가 나에게 하나의 온화한 집이 되어준 셈이다. ‘그 집에 살다 가세요’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산란했던 마음이 한결 놓이고 말았으니까. 삶에 짊어진 슬픔을 시인이 창조해 낸 시적 언어 안에서 위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놀랍고도 멋진 일인지 새삼 감탄하면서. 이 생에서는 실컷 슬픔을 상대하고 단 한 줄로..
찬란 | 이병률 | 문학과지성사 “조금 일찍 쓰련다. 찬란했다고.” 시집을 손에 쥐고 있는 동안 ‘찬란’이라는 두 글자 단어가 계속적으로 나를 흔들었다. 그것에 스민 옅은 슬픔 탓이었는데, 여태껏 내가 알아 온 것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 까닭이기도 했다. 온통 환하게 비추어 그야말로 눈이 부시게 밝은 아름다움을 수놓으리라는 어떤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이어서, 어느 모로 보나 슬픔과는 도통 어울릴 법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것은 진정으로 살고자 애쓰는 이들만이 맞닥뜨릴 수 있는 어떤 감정의 일부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그리하여 살아 있다는 것, 그로 인한 경이는 – 그 안에 무엇을 담고 있든 -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찬란한 것이라고. 살아 숨 쉬고 있기에 마주할 수밖에 없는 모든 필연적 순간들이 한..
혼자가 혼자에게 | 이병률 | 달 “왜 혼자냐고요. 괜찮아서요.” 이 세계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일, 나는 그 비결을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 적어도 시작은 거기에서부터 라야 한다고 – 믿고 있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의 가치를 신뢰하는 연유다. 그것은 곧 살아갈 날들의 지평을 견고하게 다져가는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므로. 그러므로 거친 비바람에도 쉬이 뽑히지 않는 뿌리를 내리는 동시에 무성한 잎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 할 이 시간들을 늘 고대하고 있다. 사실 나는 혼자이기보다는 둘이거나 셋, 그 이상이기를 바랐다. 혼자 있는 것에 도무지 익숙지 못한 데다가, 어떤 때에는 두렵기까지 했으니까. 그런데 그랬던 내가 철저하게 혼자이기를 갈망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에 내가 느꼈던 스스로에 대한 낯..
눈사람 여관 | 이병률 | 문학과지성사 불가능한 슬픔을 쥐고 아낌없는 혼자가 되는 시간, 세상의 나머지가 세상의 모든 것이 되는 순간 세상에 나 혼자 우두커니 있음을 두려워하던 나날이 있었다. 그때 나는 누군가가 필요했지만 그 누군가를 의심하고 있었다. 믿을 것이라고는 오로지 내 눈앞의 어둠이 전부여서 그 자리에 웅크리고 가만히, 그 어둠들을 삼키고만 있었다. 그렇게 어느 골방에서 한탄하며 무기력하게 표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그 순간을 외려 소중하게 보냈어야 했다. 어둠 속에서 한층 또렷하게 갈망하던 그 무언가를 위해 스스로를 다지고, 주변을 살폈어야 했다. 그러나 한참은 모자란 존재여서 무력하기만 했다. 문득 그때 이병률 시인의 시집 『눈사람 여관』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랬다면 외로움과 결부되어 있는 이 생을 ..
끌림 | 이병률 | 달 '길' 위에서 쓰고 찍은 사람과 인연, 그리고 사랑 이야기 일상의 경계 바깥에서 바라보는 사람과 풍경에 대한 김병률 시인의 감성을 좋아한다. 그 첫 시작은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했던 여행 산문집 『끌림』이었다. 이후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망설임 없이 집어 들을 수 있었던 고마운 책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교보에서 리커버 에디션으로 재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다시 읽어도 보고 소장도 할 겸 구입해 보았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끌림』은 확실히 이전과는 다르게 끌렸다. 이전의 나는 조금 더 젊었고,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도 숨길 수 없는 호기심으로 꿈틀댔다. 새로운 방식의 여행을 갈구했고 그것은 혼자서 떠나는 것을 전제로 했다. 그러므로 그 시기의 『끌림』은 습..
바다는 잘 있습니다 | 이병률 | 문학과지성사 오래 전하지 못한 안부를 전합니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사는 것은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p.15)'를 증명하기 위한 삶은 고되고 쓸쓸하다. 그래서 깊은 밤 쉬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한 잔 술을 마시기도 하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새벽 별을 헤아리기도 한다. 어느 긴 밤에는 좋아하는 편지지를 앞에 두고 상념에 젖기도 한다. 그러나 해가 밝으면 '어제까지의 풍경'일랑 뒤로 하고, 새 아침을 맞는다. 계속해서 감당하기로 마음먹으면서. 그리고 모든 것에 잘 있다는 안부를 전한다. '삶'이란 길 위에 한 인간이 서 있고, 그가 거니는 발자취는 시가 된다. 그것은 '쓰려고 쓰는 것'이기보다는 '쓸 수 없어서' 쓰는 시에 가깝다. 이를테면, 삶으로 쓰는 시(詩)랄 수 있다. 그 여정을 좇으면서, 자연스레 생의 ..
내 옆에 있는 사람 | 이병률 | 달 나는 사랑합니다 계절을, 계절의 냄새들을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평온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행복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때때로 비일상에서의 기쁨이 갑절은 더 기다려지는 순간들이 있다. 가령 푸른 섬 해안도로를 달리며 맡았던 바다 내음이 주는 상쾌함 같은 거다. 별 거 아니지만, 또 별 거인 게 되는 것이 바로 비일상이 주는 특권이기도 하니까. 그러므로 떠나고 싶단 말을 모르는 사이 나지막이 내뱉는 순간이 온다면, 주저 말고 떠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평소보다 한 뼘 더 솔직하고 용기 있고 의욕적인 내가 좋고, 그런 나를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하는 낯선 곳이 좋은 연유다. 그것만으로도 떠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일상의 경계 너머에서 마주한 풍경 그리고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