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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9

혼자가 혼자에게 | 이병률 |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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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왜 혼자냐고요. 괜찮아서요.”

 

 

 

이 세계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일, 나는 그 비결을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 적어도 시작은 거기에서부터 라야 한다고 – 믿고 있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의 가치를 신뢰하는 연유다. 그것은 곧 살아갈 날들의 지평을 견고하게 다져가는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므로. 그러므로 거친 비바람에도 쉬이 뽑히지 않는 뿌리를 내리는 동시에 무성한 잎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 할 이 시간들을 늘 고대하고 있다.

 

사실 나는 혼자이기보다는 둘이거나 셋, 그 이상이기를 바랐다. 혼자 있는 것에 도무지 익숙지 못한 데다가, 어떤 때에는 두렵기까지 했으니까. 그런데 그랬던 내가 철저하게 혼자이기를 갈망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에 내가 느꼈던 스스로에 대한 낯섦, 타인인 듯한 이질감, 그 당혹스러움을 감싸던 공기의 흐름마저 참으로 기묘 했다고 이따금 생각한다. 무엇이 그토록 혼자이기를 바라게 했던 걸까. 나는 그 이유를 한참 뒤에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는데,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지쳤던 것이리라.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그저 조금씩 소진돼 가던 내 안의 에너지가 방전 상태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어찌됐든 그때의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바라며, 내친김에 짐을 꾸렸었다. 그러고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지내면서 – 때때로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 스스로도 놀랄 만큼 어떤 해방감 내지 희열을 만끽했던 것도 같다. 말하자면 혼자 있는 시간의 가치를 머리 이전에 가슴에서부터 비로소 깨달아 가던 시간들이었지 않나, 지금 와 생각하곤 하는 것이다. 덕분에 지금의 나는 혼자이기를 무작정 꺼려하던 지난날은 덮어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어색함 없이 잘 지낼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보다 건강한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임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됐다. 서로에게 깊은 신뢰와 존경의 마음을 표할 수 있고 때로는 의지하며 지지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우리 곁에는 필요하다는 사실을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알아갈 수 있는 것은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사람만이 가슴속 깊숙이에서부터 이해할 수 있는 깨달음이라는 것을 통해.

 

이병률 시인의 신작 산문은 그런 내 생각들에 한층 힘을 실어주는 글들이었다. 말하자면, 혼자인 순간에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이야기였달까. 나아가 혼자 있는 시간에 동반하는 외로움을 어루만지는 동시에 그 안에 무겁게 가라앉았던 묵은 공기를 정화해 주는 느낌이 신선했다. 이를테면 그가 풀어놓은 이야기들 안에서 장소를 달리해 어딘가에 혼자일 수많은 혼자들의 마음을 보듬고 그들의 허기지고 정체된 마음 한구석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그것은 여기 이 산문들이 혼자라는 조건을 충족해야만 켜켜이 쌓을 수 있는 온전한 혼자의 기록인 이유기도 하다. 시인의 말처럼, 누군가 왜 혼자냐고 묻는다면, 조금의 주저함 없이 “괜찮아서요.”라는 대답을 나 역시 해 보련다.

 

 

 

우리가 가끔 혼자이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분명 어딘가 도달할 점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내 밑바닥의 어쭙잖은 목소리를 스스로 듣게 된다면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을. (…) 우리가 어떻게 혼자일 수 있는가는 의존적으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부터 가능하다고. (…) 혼자 있으면 무조건 심심할 거라며 회피하는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란 건 별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진전 하고픈 걸 할 수 있는 상태는 정말로 혼자일 때 아닌가. 세상 눈치보는 일 없이 자유로운 상태일 테니 행동력이 따라오는 건 당연. 혼자는 초라하지 않다. 오히려 외로움은 사람을 입체적으로 다듬어준다. 우리의 혼자 있는 시간은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특별한 의미로 사람을 빛나게 하고 또 사람을 선명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외로움이야말로 정말이지 새로운 희망이며 새로 나온 삼각김밥이다. 단 정말로 중요한 건 혼자서도 잘 있되 갇히지 말아야 하는 것이겠지만, 혼자일 수 없는 사람이 억지로 혼자이다보면 망가지는 경우도 숱하게 있으니 이때 역시도 중요한 건 균형김밥이다.    - p.122, 123

 

 

 

 

 

혼자가 혼자에게 - 10점
이병률 지음/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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