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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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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 | 권석천 | 어크로스 저널리스트 권석천, 당신과 나, 우리의 오늘에 대해 질문하다 글을 마주하면서 한동안 나는 냉엄한 기분에 젖었다. 그가 바라본 세상과 사람을 향한 시선 안에서 각성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죄의식, 그로 인한 낭패감 탓이었다. 늘 자기 객관화를 염두에 두고자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합리화하며 무너지고 말았던 일을 스스로에게 조차 가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이중 잣대였다. 자신으로 인한 잘못은 은근슬쩍 넘기기도 혹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하면서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엄히 따지려는 행태, 이것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져 있을 때의 불상사를 심심찮게 목도하며 한탄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더욱이 사회 정의를 입버릇처럼 외치는 사람들이 정작 안으로는 자신과 가족, 속한 집단의 일에는 서슴..
죽은 자의 집 청소 | 김완 | 김영사 죽음 언저리에서 행하는 특별한 서비스 엄연한 현실의 일임에도 도무지 믿기 힘들 때가 있다. 이게 진짜냐고, 차라리 픽션이라고 하는 편이 한결 납득이 가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게 만드는 그런 일들. 죽은 자의 집 청소, 이른바 특수청소라는 업이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가령 일본 소설 속 주인공이 맞닥뜨린 상황이라고 하는 편이 더 그럴싸한 느낌이었달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대개의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이야기란, 일상의 것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딘가 마뜩잖은 구석이 있어서 – 의도를 가지고 있든 무의식이든 간에 – 비현실의 일로 미루어 두려는 심리 기제가 발동한 경우가 아닐는지. 말하자면 구태여 알고 싶지 않은 일, 차라리 모르는 걸로 치부하고 싶은 일들 말이다.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손에 쥐고 있는 동안 내..
맛 읽어주는 여자 | 모리시타 노리코 | 어바웃어북 음식에 담긴 삶의 서사와 시대의 풍경을 음미하다 저자는 오랜 미식 경험을 바탕으로 능숙하게 음식 이야기를 전한다. 유년 시절 맛보았던 음식에 얽힌 추억을 바탕으로, 그 음식이 어떤 시대적 배경 안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 그러니까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으로 거듭나기까지의, 각기 음식들이 걸어온 시간들을 한 개인의 추억과 더불어 되짚어 보는 식이다. 가령 외부로부터 들여온 식재료를 자신들만의 조리법을 통해 새롭게 탈바꿈시킨 돈가스나 카레라이스, 고로케 등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한편으로는 학창 시절의 씁쓸한 기억 때문에 기피하게 된 찹쌀 주먹밥과 팜피 오렌지에 얽힌 이야기,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맛을 알게 된 가지 요리와 '오하기'라는 이름의 팥떡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을 사기에 ..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유현준 | 을유문화사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닮는다 건축물과 거리,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건축가의 인문적 시선이 흥미롭다. 나 역시 건축물과 도시를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을 가질 수 있기를. #. 걷고 싶은 거리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홍대 거리는 높은 이벤트 밀도와 낮은 공간의 속도를 특징으로 하는 것에 반해, 테헤란로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인다. '이벤트 밀도와 거리 공간의 속도는 거리가 보행자에게 얼마나 호감을 주는지를 알려 주는 지표(p.40)'가 된다는 것의 실례인 셈이다. 여기에 더해, 이벤트 밀도는 다소 떨어지나 속도가 느린 덕수궁 돌담길 역시 사람들이 걷고 싶은 거리 중 하나랄 수 있다. 그 이유를 저자는 안전에서 찾는다. 담장과 보안은 사람들로 하여금 방해받지 않으면서도 마음 놓고 거닐 수 있는 여유..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 에밀 시오랑 | 챕터하우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는가? "나는 폭발하고 침몰하고 분해되고 싶다. 그래서 나의 파괴가 나의 작품, 나의 창작물, 나의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 슬픔, 절망, 고독, 분노, 증오, 허무, 죽음…. 에밀 시오랑(Emil M. Cioran)에게 생(生)의 비극은 외면이나 기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담담하게 맞닥뜨려야만 하는 결연한 의지의 대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태여 이겨내야 할 대상 역시 아니다. 직시의 대상일 뿐이다. 그렇기에 절망에 빠진 우리를 함부로 위로하지 않는다. 산산이 부서짐을 자처하며 완성한 시오랑의 절망의 팡세가 유의미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갖 생의 비극 안에서 나약해지기 마련인 우리에게 절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다. "언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