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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5

읽는 인간 | 오에 겐자부로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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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우리는 왜 읽어야 하는가?
거장의 인생을 만들어낸 치열한 책 읽기의 기록!

 

 

 

『읽는 인간』은 "정녕 제 인생은 책으로 인해 향방이 정해졌음을, 인생의 끝자락에서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p.18)라고 고백하는 일본 문학계의 거장, 오에 겐자부로가 그간의 읽어온 책들과 그 방식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견뎌내고 이뤄온 삶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밝히고 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그의 고백이 어떤 의미였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아홉 살 나이였던 그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책을 처음 읽게 됐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그 책에서 발견한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라는 구절을 평생의 마음가짐으로 삼겠다고 다짐했었다고 전한다. 정녕 그 나이 때에 가능한 결심일 수 있을까, 싶은 비범함에 자못 놀라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이후 인생의 어떤 순간에서도 결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는 데에 있고, 앞의 일화는 그런 삶을 살아갈 혹은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어린 소년의 운명에 대한 예견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도 그는 책과 함께 성장하고 책을 통해 삶의 무게를 견뎌낸, 그야말로 책과 동반한 일생이었음을 수차례에 걸쳐 고백하고 있다. 또한 단순히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문학 언어에 새로이 눈뜨고 그런 감각을 키워 자신만의 문체를 찾고자 반복된 훈련을 꾸준히 했다.

솔직히 제아무리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해도 오에 겐자부로식 독서는 좀처럼 범접하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소 집요할 정도로 파고드는 그만의 책 읽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연유다. 그러나 장남의 장애를 비롯한 그가 감당해야만 했을 삶의 무게와 고뇌는,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있기 마련인 삶의 숙제같은 것이기도 하기에, 괴로운 순간에 책을 읽으며 도움받았고 그런 생활을 실마리 삼아 글을 썼다는 이야기에 수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감했던 부분은 재독(reread)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전신 운동이 된다."(p.35)라는 그 표현이 와닿았달까. 책을 읽어나가며 나 또한 재독의 중요성을 자연스레 실감할 때가 종종 있었던 이유다.

『읽는 인간』은 나의 책 읽기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선사하기도 했다. 더불어 오에 겐자부로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을 읽는 시간 만큼은, 작가가 고민하며 신중하게 써 내렸을 문장들을 좀 더 진중한 자세로 음미하며 읽어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도 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읽어나갈 거라 믿는 무수한 책과 그간 읽어왔던 책을 포함하여, 그것들이 내 삶 안에서도 언젠가 빛을 발하게 되는 시기가 오길 바란다. 사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그런 조짐이 일어나기 시작됐다면 더 좋겠고.

 

 

 

이건 자신 있게 드리는 말씀인데, 정신 차리고 지속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면, 저절로 고전이 한 권, 두 권, 그것도 일생에서 아주 소중한 무언가가 될 작품이 여러분에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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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중요한 책이라기에 읽기는 읽었는데, 인생에 별반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겼던 책이 몇 권쯤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것이 빛을 발하게 될 때가 올 테니, 기대하고 계셨으면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p.13

 

정녕 제 인생은 책으로 인해 향방이 정해졌음을, 인생의 끝자락에서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 p.18

 

우선 처음에는 번역서에 선을 그어가며 빈틈없이 읽습니다. 두 번째는 선을 그은 부분을 원문과 하나하나 대조하며 읽어갑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그게 정말 좋은 책이고 한 달 정도 공을 들여 읽을 짬이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쭉 원서로 읽어봅니다. 그것이 재독의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 p.41

 

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는 프랑스어를 읽거나 영어를 읽으면서 갖춰졌습니다. 외국어 텍스트를 읽으면서, 그것도 주로 사전에 의지해 읽어가면서 제 마음속 혹은 머릿속에, 그러니까 제 언어의 세계에 다양한 형태의 영어나 프랑스어 원서가 메아리쳤습니다. 그것을 일본어로 옮겨놓자고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정말 새로운 언어와 만나게 됩니다. 혹은 새로운 문장이 떠오르기도 하죠. 이런 식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외국어와 일본어 사이를 오가면서요. 이렇게 언어의 왕복, 감수성의 왕복, 지적인 것의 왕복을 끊임없이 맛보는 작업이,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문체를 가져다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은 번역을 하게 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소설을 썼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 소설의 세계가 사작되었던 것이지요.    - p. 67

 

외국어 책을 읽는 것과 일본어 소설을 쓰는 것이(완전히 다른 행위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서로에게 여운을 남깁니다. 어떤 소설의 근본적인 톤, 음악으로 보자면 선율 같은 것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문체'라고 부릅니다. 소설의 스타일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며, 'grief'라는 작은 단어 하나에서 문장으로, 이어서 작품 전체로 전개됩니다. 나아가 한 사람의 소설가가 지닌 인간을 바라보는 견해, 사고방식, 소설가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자세와도 이어지는 것이죠. 그것이 '문체'이며, 결국 우리는 이것을 읽어내기 위해 소설을 읽고 소설로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    - p.82

 

저는 아무래도 인생을 살며 구덩이 같은 데 빠지기 쉬운 타입이 아닌가 싶어요. 가끔 고통스러운 곳으로 빠져듭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책을 읽으며 도움을 받았어요. 괴로울 때는 주로 책을 읽습니다. 우선은 생활을 해나가야 하기에 소설을 씁니다. 어떻게 쓸 것인가? 읽고 있는 책을 실마리 삼아 내 생활을 쓴다, 아이를 중심으로 쓴다, 라는 식으로 써왔어요.    - p.95

 

"나의 영혼은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어, 죽어서라도 누명을 벗고자 올바른 몸으로 옳지 않은 일을 행하였다."(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13곡 중에서) 자신의 정신이 분노에 사로잡혀 죽음으로써 자신의 누명을(가십도 이런 종류 중 하나죠) 벗으려고, '올바른 몸으로 옳지 않은 일을 행'합니다. 자신은 나쁜 일을 한 적 없는 '올바른 몸'이에요. 하지만 자살한다는 것, 자신의 육체에 폭력을 행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니, '올바른 몸으로 옳지 않은 일을 행'했다는 것이죠.    - p.144

 

이건 자신 있게 드리는 말씀인데, 정신 차리고 지속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면, 저절로 고전이 한 권, 두 권, 그것도 일생에서 아주 소중한 무언가가 될 작품이 여러분에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 p.153

 

실제로 무슨 책을 읽든지 '배우기, 외우기, 깨닫기'를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문학 책을 읽으면서도 특히 시가 어렵다고 느낄 때면, 우선 그걸 외우기로 했습니다. 이토 시즈오의 어려운 시 역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한 줄 한 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시를 중얼거리는 동안,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그 의미를 자력으로 깨닫게 된 것이죠.    - p.187, 188

 

제가 소설가이고, 오직 한 사람의 사상가를 몇 년 동안 읽은 시기를 제외하면, 제 인생의 독서에서 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문학을 배운다'는 자세로 집중적으로 읽었던 것은 다름 아닌 시(詩)였습니다.    - p.201

 

 

 

 

 

 

읽는 인간 - 8점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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