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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2

이토록 평범한 미래 | 김연수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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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소설이 시간을 상상하는 여덟 편의 방식과
이야기가 우리 삶을 바꾸어내는 경이의 순간

 

 

 

우리는 과거에 대한 기억과 경험, 이를 바탕으로 터득한 현실의 체험이 외부 세계와 맞닿는 중에 아직 오지 않은 미지의 시간을 예감한다. 그렇게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그걸로는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삶이 단선적이지 않은 연유리라. 삶을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만 보아도 그렇다.

김연수 작가의 신간 소설집에 엮인 여덟 편이 그 좋은 예이다. ‘이야기’의 형태로 구현하는 삶, 그 안에서도 시간의 직선적 흐름에 구애되지 않는 방식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인식하고자 하는 이들과 조우하게 하는 까닭이다. 말하자면 자신과 외부 세계의 접점을 보다 능동적이면서도 다각적으로 파악해 나가고자 하는 이들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삶을 추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곧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을 바라보고 상상하는 여러 방식과 그 무한에 가까운 가능성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언제가 우리의 삶이 될 것이”(p.273)라는 작가의 말처럼 나 역시도 그것을 믿기에 이 모든 이야기들을 허투루 흘러 보낼 수 없으리라.


 

 

어릴 때 내가 상상한 미래는 지구 멸망이나 대지진, 변이 바이러스의 유행이나 제3차세계대전 같은 끔찍한 것 아니면 우주여행과 자기부상열차, 인공지능 등의 낙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펴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 p.34, 35 「이토록 평범한 미래」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 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 p.60 「난주의 바다 앞에서」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달까지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 p.73 「진주의 결말」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아무리 세찬 모래 폭풍이라고 할지라도 지나간다는 것을 믿는, 버스 안의 고개 숙인 인도 사람들처럼. 그건 그 책을 읽기 전부터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였어.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도 책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그분들은 왜 그렇게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할까? 나는 왜 같은 이야기를 읽고 또 읽을까?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된 거야. 그 이유를.” “이유가 뭔데?” “언젠가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되기 때문이지.”    - p.121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우리의 얼굴은 유동한다. 흐르는 물처럼 시간에 따라 조금씩 과거의 얼굴에서 미래의 얼굴로 바뀌어간다. 그렇게 우리의 얼굴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 덕분에 거기 희망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 p.142 「엄마 없는 아이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 p.181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언제나 마음이 유죄지.” 영원한 여름이란 환상이었고, 모든 것에는 끝이 있었다. 사랑이 저물기 시작하자, 한창 사랑할 때는 잘 보이지도 않았던 마음이 점점 길어졌다. 길어진 마음은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미워한다고도 말하고. 알겠다고도 말하고, 모르겠다고도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만 하고. 마음은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유좌다.    - p.196 「사랑의 단상 2014」

 

과거의 우리를 생각할 수 있는데, 왜 미래의 우리는 생각할 수 없을까?    - p.224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이토록 평범한 미래 - 8점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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