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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2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 진은영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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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그러니까 시는

 

 

 

‘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는 시인의 말을 곱씹어 본다. 시인은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에 그러니까 시를 썼다. 이 땅에서 목도한 슬픔과 절망 그로 인한 고통을 지그시 참고 견디며 함께 이겨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시를 썼다. 그런 까닭에 시들이 나를, 우리를 깨운다. 함께 애써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마주 잡은 두 손으로 훼손당한 것을 보듬고 끌어안아야 한다고, 사랑해야만 한다고. 그러니까 시는, 진은영 시인의 시는 그렇게 나를 흔들었다.

 

 

 


우리가 절망의 아교로 밤하늘에 붙인 별

그래, 죽은 아이들 얼굴
우수수 떨어졌다
어머니의 심장에, 단 하나의 검은 섬에

그러니까 시는
제법 볼륨이 있는 분노, 그게 나다! 수백 겹의 종이 호랑이가
레몬 한 조각에 젖는다
성냥개비들, 불꽃 한 점에 날뛴다

그러니까 시는
시여 네가 좋다
너와 함께 있으면
나는 나를 안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시는
여기 있다

유리빌딩 그림자와
노란 타워크레인에서 추락하는 그림자 사이에
도서관에 놓인 시들어가는 스킨답서스 잎들
읽다가 덮은 책들 사이에
빛나는 기요틴처럼 닫힌 면접장 문틈에

잘려 나간 그림자에 뒤덮여서
돋아나는 버섯의 부드러운 얼굴

그러니까 시는
돌들의 동그란 무릎,
죽어가는 사람 옆에 고요히 모여 앉은

한밤중에 쏟아지는
폐병쟁이 별들의 기침
언어의 벌집에서 붕붕대는 침묵의 말벌들

이 슬픔의 앙상한 다리는 어느 꽃술 위에 내려앉았나
내 속에 매달린
영원히 익지 않은 검은 열매 하나

- p.10, 11, 12 「그러니까 시는」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 8점
진은영 지음/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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