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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2

딩씨 마을의 꿈 | 옌롄커 |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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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인간의 문명사적 재앙에 대한 고통스러운 사유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매혈을 하고, 대형 관 공장을 관리하면서 관을 팔며, 결혼 전에 죽은 이들의 음혼을 주선하는 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딩후이. 그런 아버지 탓에 복수심을 품은 사람이 마을 어귀에 놓은 독 묻은 토마토를 먹고 죽은 열두 살 난 샤오창. 매혈 운동의 우두머리인 큰 자식과 불륜을 저지른 둘째 아들에 불만을 품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매번 꾸짖고 달래며 중재하고자 동분서주인 딩후이의 아버지이자 샤오창의 할아버지인 딩수이양. 옐롄커 소설 『딩씨 마을의 꿈』은 이들 삼부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면서도 땅에 묻힌 소년 샤오창의 시선을 통해 전개되는 데에 한층 강렬한 비극성을 가진다.

딩씨 마을에 덮친 열병으로 파생된 모든 이야기는 물질적 풍요를 탐한 인간의 욕망에서 기인한다. 이것이 이 마을에서 빚어진 참극이 한층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이유기도 한데, 지금 이순간 떠오르는 몇몇 장면들 속 사람들만 봐도 그렇다. 누군가는 제 것 아닌 물건에 손을 댔고, 어떤 이들은 불륜을 저질렀으며, 그것을 빌미 삼은 또 다른 누군가는 이혼장과 재산을 맞바꾸기를 요구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뿐인 관인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고, 누군가는 할당된 물건을 제 집으로 나르는데 얼마 남지 않은 제 목숨을 바치는 어리석음을 보이기도 했다. 숭고한 인간의 정신적 가치는 저버린 채, 오직 욕망과 쾌락에만 몰두한 사람들은 열병에 걸려 하나, 둘 죽을 운명에 처해 있으면서도 눈을 감는 순간까지 놓을 수 없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물질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었다. 그야말로 지리멸렬에 빠진 이 마을은 아수라장과 다름없었다. 그 정점에 있는 장면은 단연 딩후이가 자신이 있는 상부(신시가지)로 찾아온 아버지 딩수이양을 극진하게 대접하며 자기 집, 그것도 돈다발로 가득 쌓인 방으로 안내하던 순간이었다. 딩후이는 말했다. “아버지, 이만 주무세요. 오늘 밤 이 방에서 주무시면 꾸고 싶은 꿈을 전부 꾸실 수 있을 거예요. 이 아들이 효도 한번 제대로 하는 셈이지요.”(p.565)라고. 나아가 그는 딩씨 마을에 묻힌 제 아들 샤오창의 음혼을 거행하며 마을 사람들을 향해 이제 제 아들이 새로 묻힐 베이망산 능원의 묘지까지 크게 선전하며 판매하고자 하는 끝 모를 탐욕을 보였다.

작가는 딩씨 마을을 통해 인간의 삶을 묻고 있다고 나는 이해했다. 열병의 재앙 속에서도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힘으로써 더한 고통과 절망을 껴안아야만 했던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마을 밖에 있는 우리를 다그치고 깨우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꿈만 해도 그렇다. 피를 팔아서라도 욕망을 채우려 했던 허황된 욕심, 바로 이기심의 말로는 결국 핏빛 세상임을 보여주었으므로.

 

 

 

꿈속에서 그는 전에 가본 적이 있는 웨이현 현성과 둥징성 지하에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파이프를 보았는데, 파이프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제대로 접합되지 않은 파이프 연결 부위와 파이프가 꺾어지는 지점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허공을 향해 뿌려지고 있었다. 붉은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진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할아버지는 평원의 우물과 강물 모두 새빨갛고 비린내가 진하게 풍기는 피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다.    - p.21, 22

 

 

 

 

 

딩씨 마을의 꿈 - 10점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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