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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3

침묵 | 엔도 슈사쿠 | 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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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그리스도교 박해의 시련 속에 배교를 강요당한 고뇌의 여정

 

 

 

이교도의 나라 일본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뿌리내리게 하고자 선교 활동에 나선 성직자들이 있었다. 1637년 포르투갈 예수회 신부 세바스티안 로드리고가 그중 한 사람으로 동료 신부인 프란치스코 가르페와 함께 마카오를 거쳐 일본으로 향했는데, 거기에는 앞서 떠난 스승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 소식에 대한 진위를 살피기 위함도 있었다. 그렇게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로드리고 신부가 마주해야만 했던 — 그리스도교 박해의 시련 속에 배교를 강요당한  — 고뇌의 여정을 따른다.

그 여정을 밟으며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자연스레 하느님의 침묵에 대하여 묵상해 본다. “하느님께선 무엇 때문에 이런 괴로움을 내려주십니까?”(p.94) 읍소했던 기치지로의 물음이 머릿속에 맴돌았던 것이다. 이 외침 안에서 로드리고 신부는 몹시 비통해 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침묵”(p.94)이라는 엄연한 현실이 무겁게 다가온 이유였다. “박해가 일어나 오늘까지 20년, 이 땅에 많은 신자들의 신음소리가 가득 차고, 신부의 붉은 피가 흐르고, 교회의 탑이 무너져 가는데도, 하느님은 자기에게 바쳐진 너무나도 참혹한 희생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침묵만 지키고 계”(p.94)심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진 시간들 속에서 로드리고 신부는 그분의 사랑을 한층 절실하게 느끼며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필요했던 것이”(p.330)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나아가 “설령 그분은 침묵하고 있었다 해도 나의 오늘날까지의 인생이 그분에 대해 얘기하고 있”(p.330)음을 통렬하게 깨닫는다. 이와 같은 극한의 고통과 갈등 안에서 비로소 다다른 로드리고 신부의 깨우침은 그의 이름 앞에 붙은 배교자를 지워낼 순 없었지만 그가 소망했듯 하느님만은 그가 결코 배반하지 않았음을 알아주시리라.

더불어 늘 미덥지 못한 신앙인의 태도로 로드리고 신부를 곤경에 처하게 했던 기치지로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육체의 공포 탓에 차라리 비난받는 길을 택한 인물이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약함을 인정하고 끈질기게 죄를 사해 주십사 매달리며 고해를 청했는데, 어쩌면 이는 박해 시대의 다수 신앙인의 가련한 모습이기도 할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는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면 그 역시 평범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자녀로서 살아갔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그가 처했던 운명의 가혹함은 말해 무엇할까. 물론 그럼에도 기꺼이 제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지켰던 이들이 존재함을 앞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박해의 시련 속에 혹독한 운명의 갈림길에 처했던 성직자와 신자들의 모습을 통해 신앙인으로서의 삶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새벽의 희미한 빛, 빛은 노출된 신부의 가느다란 목과 쇄골이 드러난 어깨에 비쳤다. 신부는 두 손으로 성화를 들어올려 얼굴에 갖다 댔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에 짓밟힌 그 얼굴에 자기 얼굴을 대고 싶었다. 목판 속 그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짓밟힌 까닭에 마멸되고 오그라든 채 신부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분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 목판 속 그분은 신부를 향해 말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어 갖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졌다.    - p.296, 297

 

 

 

 

 

침묵 - 10점
엔도 슈사쿠 지음, 김윤성 옮김/바오로딸(성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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