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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3

미겔 스트리트 | V.S. 나이폴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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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좌절과 광기로 얼룩진 식민지 사회 미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비극적 초상을 
한 소년의 눈을 통해 희극적 터치로 그려 낸 연작 소설

 

 

 

트리니다드 섬의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의 빈민굴 미겔 스트리트. 여기 살고 있는 소년 ‘나’는 자신의 눈에 비친 거리의 사람들을 열여섯 편의 단편을 통해 그리고 있다. 그들 대다수는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거나 아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거하게 술을 마시고 도박을 즐기며 아내와 자식을 구타하기도 한다. 또한 불륜을 저지르고 도둑질을 일삼으며 경찰에 연행되는 일도 빈번하다. 소년은 “그러나 거기서 살고 있던 우리는 그 거리를 하나의 세계로 여기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각기 특유의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p.101)고 회고한다. 확실히 그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자신만의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이 공유한 세계는 온갖 속임수와 욕설, 폭력이 난무했고, 그곳에서 무감각해진 채 자신과 타인을 향한 불신과 냉소는 그들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자율성을 잃은 삶을 살게 만들었다. 이는 스페인과 영국의 오랜 통치 속에서 식민지 국민들이 체득한 비극적 타락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실로 오랜 세월이었다. 따지고 보면 삼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나는 성장했고 내 주위의 사람들을 비판적인 눈으로 보게 되었던 것이다. (…) 내 눈에도 모든 것은 변해 있었다. 해트가 감옥에 가던 날 나의 일부가 죽어 버렸던 것이다.    - p.278 「해트」

 

 

 

이후 소년은 성장하여 세관에 취직한다. 그 얼마 뒤, “이곳에서 너는 너무 난폭해지고 있구나. 내 생각으로는 네가 이곳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p.279) 라는 어머니의 말로 시작된 열일곱 번째 단편은 제목 그대로 미겔 스트리트를 떠난 경위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그저 떠나야겠다는 막연한 ‘나’의 결심은 자칫 여태껏 미겔 스트리트를 터전 삼았던 사람들이 보여준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분명하게 다른 점 하나가 있다. 그것은 이 거리에서 퍽 난폭해진 자신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나’는 미겔 스트리트를 떠나 영국으로 향한다. 그것은 곧 자신이 노출된 공간이 부여한 삶의 부조리를 깨닫고, 새로운 세상에서 비로소 자율적인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로 이해해도 무방하리라.

 

 

“무엇을 특별히 공부해야겠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것뿐입니다.”    - p.282 「내가 미겔스트리트를 떠난 경위」

 

 

 

 

 

미겔 스트리트 - 10점
V.S. 나이폴 지음, 이상옥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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