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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3

묵주알 | 나가이 다카시 | 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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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수년 전 우연찮게 『나가사키의 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인 나가이 다카시(永井隆)를 알게 됐다. 나가사키 원폭의 현장에서 두 아이와 살아남았지만, 아내를 잃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이였다. 그는 참혹한 현장 속에서도 낙담하기보다는 나가사키의과대학의 교수로서 아픈 사람들을 도우며 그날의 참상을 기록함으로써 제 소임을 다하고자 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바오로딸 다시 읽고 싶은 명작 중 하나인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통해 같은 시리즈에 있던 그의 『묵주알』을 알게 돼 읽어 보게 된 것이다.

 

 

우라카미천주당(浦上天主堂) - 원폭의 피해로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1959년 재건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실로 헤아릴 수 없는 비극을 가져왔다. 나가이 다카시 역시 참화의 현장 속에서 아내와 집은 물론 모든 재산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신앙인으로서 원망의 마음을 품는 대신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외려 기쁜 마음으로 앞으로의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도 “원자폭탄에 의해 우리가 받은 피해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집을 잃은 것도, 재산이 몽땅 불타버린 것도, 많은 친족과 친한 벗들을 잃은 것도, 장애인이 되어 병상에 누워 움직일 수 없게 된 것도 아니다. 가장 큰 피해는 나 자신과 이웃들의 영혼의 추악함을 뚜렷이 보게 됨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심을 잃었다는 것이다”(p.187)고 밝히며 통렬하게 한탄했다. 그러면서도 거기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반성을 통한 신뢰 회복과 평화를 향한 기도에 몰두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 주었다. 한편 그런 우직한 신념의 그임에도 자신의 몸이 성치 않아 머지않아 고아가 될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면서는 애통해하며 양육을 고민하고 걱정하는 면모는 여느 부모의 모습과도 마찬가지여서 인간적인 동시에 그 지극한 사랑에 가슴 한 켠을 아려오게도 했다.

 

 

원폭에 의해 파괴된 우라카미천주당의 옛 종탑의 모습



가톨릭 신자로서 하느님께 의지하며 원폭 이후의 삶을 글로써 남긴 나가이 다카시의 『묵주알』. 여기에는 병상에서 기록한 일기와 여기당에서 생활하며 적은 생각들, 그리고 그가 보냈던 편지 글, 마지막으로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26위(位) 성인을 기리는 글이 담겨있다. 정성스레 묵주알을 꿰 듯 하나씩 읽어 가며 한 인간 존재가 자신이 믿는 신앙 안에서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나가사키의 종 | 나가이 다카시 | 페이퍼로드

원자폭탄 피해자인 방사선 전문의가 전하는 피폭지 참상 리포트 몇 해 전 나가사키에 간 일이 있었다. 원폭으로 인해 참혹했던 칠십여 년 전의 참상이 지금 발 딛고 있는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

byeolx2.tistory.com

 

 

원자탄의 폭격을 당했으나 우리는 행복하다. 우라카미 주민의 신앙을 보라. 성당 안에 모셔놓은 성체 앞에서 함께 기도하며, 모든 이웃이 서로 도와가며 기꺼이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은 겉으로는 가난하고 괴롭게 보일지 모르나 그 내면에는 행복이 가득 차 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3-4)라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 모두가 믿고 있기 때문이다.    - p.59, 60 「제1부 병상일기, 묵주알 : 네 잎 클로버」

 

 

나는 보잘것없고 무력하고 비천한 인간입니다. 가난하고 더러운 자입니다. 나는 기도하면서 하느님께 다가가려고 노력을 계속합니다. 그 너무나도 가련한 모습과 어설픈 걸음걸이, 그러나 진리를 탐구하려는 열심과 진지한 원의, 이러한 것을 위에서 내려다보시는 하느님이 애련의 정을 베푸시어 그 진리를 부여해 주십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진리를 몸 가까이 끌어당겨 포옹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p.238 「제2부 여기당에서 한 생각, 과학자의 신앙 : 개미와 설탕」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을 믿읍시다. 하느님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로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합시다. 우리 인간의 지혜로 생각할 때, 마치 우리가 하느님에게 버림받은 것 같다 해도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영원한 행복의 길로 들어가게 할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깨달읍시다. 설령 지금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중에 가서는 아하, 바로 그것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 p.312, 313 「제3부 편지」

 

 

 

 

 

 

묵주알 - 10점
나가이 다카시 지음, 이승우 옮김/바오로딸(성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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