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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4

에이미와 이저벨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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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용기와 어려움에 관해 빛나는 고결함과 유머로 써내려간 소설

 

 

 

딸 에이미와 엄마 이저벨은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다. 하지만 그 관계에는 미묘한 어긋남이 자리한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친밀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도무지 가 닿을 수 없는 간극이 모녀가 보낸 무더운 계절 안에서 한층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질식할 듯 뿜어내는, 그럼에도 이미 익숙해져 버린 유황 냄새에 장악당한 그녀들이 살고 있는 작은 도시만큼이나 끈질기고도 지독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바보 같은 자신들의 삶이 고단하고 구역질났지만 서로 찰싹 들러붙어 있”(p.313)을 수밖에 없다고 한 이 관계에 대하여 자연스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비단 모녀 관계의 일만은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일정 거리를 유지해 오며 지내왔다 가도 어느 한순간을 계기로 그 벽이 허물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믿었던 이의 배반으로 영영 돌아서 버리기도 하는, 그리하여 서로의 삶을 구원하기도 하지만 망가뜨리기도 하는 관계들에 대해서도 떠올려보게 하는 연유다. 더군다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타인의 고통에 눈 감을 수도 있는 존재임을, 그러나 이 모든 사람들이 우리 곁의 평범한 사람들임을 상기하게도 한다. 문득 이저벨의 초대를 깜빡했다는 에이버리 클라크의 어처구니없는 변명의 순간이 떠오른다. 하필이면 그때 이저벨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고 훗날 딸 에이미가 간직하리라 여겼던 벨리크 자기 크리머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때 사방으로 깨진 조각들 속에서 그녀는 각성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산산조각 난 것은 단순히 벨리크 자기 크리머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하여 말이다. 또한 “이 세상 어떤 사랑도 끔찍한 진실을 미리 막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그대로를 물려준다는 진실을.”(p.522) 이라 했던 이자벨의 모습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처럼 삶이라는 이름 하에 차곡하게 쌓이고 있는 일상 안에서 우리가 부대끼는 순간들은 대개 이런저런 관계 속에서 비롯함을 인식하게 된다. 더욱이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에이미와 이저벨』은 이 모든 관계 안에서 환희와 슬픔, 희망과 절망 그 사이의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남기고 간 마음의 흔적들을 섬세하게 어루만지고 있다.


 

조난당한 여자들이 있는 이 공간에는 어제도 오늘도 친절함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간직해야 할 비밀은 남아 있었다. (…) 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계속 나아갈 뿐이다. 사람들은 계속 나아간다. 수천 년 동안 그래왔다. 누군가 친절을 보이면 그것을 받아들여 최대한 깊숙이 스며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은 어둠의 골짜기는 혼자 간직하고 나아가며, 시간이 흐르면 그것도 언젠가 견딜 만해진다는 것을 안다.    - p.507, 508

 

 

 

 

 

에이미와 이저벨 - 10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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