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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4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패트릭 브링리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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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인류의 위대한 걸작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한 남자의
삶과 죽음, 인생과 예술에 대한 우아하고 지적인 10년의 회고

 

 

 

형을 잃은 저자는 뉴욕의 마천루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도 유망한 회사에서 나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기로 한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던 세상을 등지고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p.69)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결정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

 

 

이제 내가 할 유일한 일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망을 보는 것.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은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것. 이는 정말 특별한 느낌이다.    - p.33, 34 「1장 -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

 

 

 

그렇게 미술관 경비원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완수하면서도 틈이 날 때면 경이로운 작품들 앞에 섰다. 예술가의 땀과 그 안에 깃든 혼을 어루만지며 시공간을 뛰어넘어 교감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서 자연스레 인간 존재와 그들 각자에게 부여된 삶을 헤아려본다. 그것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고통스러움을 이해하려 애쓴다.

 

 

<여름의 베퇴유>라는 제목의 풍경화가 시야에 가득 찰 정도로 바짝 다가선 나는 내 눈이 이 허구의 세계를 실감 나게 받아들이다는 걸 확인한다. (…) 모네의 그림은 우리가 이해하는 모든 것의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드문 순간들 중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산들바람이 중요해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중요해진다. 아이가 옹알거리는 소리가 중요해지고, 그렇게 그 순간의 완전함, 심지어 거룩함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경험을 할 때면 가슴에 가냘프지만 확실한 떨림을 느낀다. 이와 비슷한 느낌이 모네가 붓을 집어 드는 영감이 되었으리라 상상한다. 그리고 지금 이 그림을 통해 모네가 느꼈을 전율이 내게 전해져온다.    - p.116, 117 「5장 -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드문 순간」

 

…내가 뜻밖으로 느꼈던 것은 거장의 ‘지문’을 그토록 부자연스럽고, 일그러지고, 불완전하고, 초보적인 것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완벽한 외양을 갖춘 완성품만으로는 예술에 대한 배움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작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에 들어간 고통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자기 자신이 무언가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궁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보는 데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사실 평생 처음으로 나도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엄청나게 무질서하고 즉흥적인 과정을 밟으면서 두 명의 작은 인간과 그들이 살아갔으면 하는 작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코 완벽하지도, 완성할 수도 없는 프로젝트겠지만 말이다.    - p.275 「11장 - 완벽하지도 않고 완성할 수도 없는 프로젝트」

 

 

 

비단 거장의 작품들만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했던 것은 아니다. 밀물과 썰물처럼 오가는 관람객들을 대하면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부대끼면서 보낸 시간들 역시 알게 모르게 그의 회복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에서 자연스레 사람들과 소통하며 보다 유연한 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한편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마주하며 “스스로 고집하고 있는 고독”(p.187)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기도 한다. 처음 미술관으로 향했던 때처럼 이제는 자신이 떠나야 할 시기가 왔음 역시도 알았던 것이리라. 그것은 곧 미술관에서 근무를 시작했을 때의 단순한 목표에서 벗어나, 살아나가야 할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겠다는 다짐의 순간이기도 했지 않았을까. “삶은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p.325) 함을 10년의 경비원으로서의 삶 속에서 다시금 깨우친 것이다.

 

 

동료 경비원들이나 관람객들과 나눈 짧은 소통에서 찾기 시작한 의미들은 나를 놀라게 한다. 부탁을 하고, 답을 하고, 감사 인사를 건네고, 환영의 뜻을 전하고… 그 모든 소통에는 내가 세상의 흐름에 다시 발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격려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비탄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리듬을 상실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여기서 일하면서 나는 메트라는 웅장한 대성당과 나의 구멍을 하나로 융합시켜 일상의 리듬과는 거리가 먼 곳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상의 리듬은 다시 찾아 왔고 그것은 꽤나 유혹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삶에서 마주할 대부분의 커다란 도전들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도전들과 다르지 않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 p.191, 192 「8장 - 푸른색 근무복 아래의 비밀스러운 자아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보낸 10년의 세월은 그에게 있어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게 한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 돼 주었다. 비록 형은 떠났지만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자신은 슬픔 가운데서도 묵묵히 제 삶을 살아 왔고, 비로소 미술관 밖 세상으로 향할 채비를 마친 셈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자신이 이루어낸 가족과 함께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그 시간들에 대하여 빼곡하게 적고 있는 저자의 글 안에서 나는 삶과 닮은 예술, 예술과 닮은 삶을 생각해 본다.

 

 

10년 전, 배치된 구역에 처음 섰을 때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 때때로 삶은 단순함과 정적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빛을 발하는 예술품들 사이에서 방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경비원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삶은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도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 p.325 「13장 -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8점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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