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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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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박완서 | 세계사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9∙20 알려졌다시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작가의 경험에 토대를 둔 자전적 소설이다. 그렇기에 더욱 흥미롭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는데, 이 두 권을 다 읽은 지금 이 책에 담긴 내용이 너무 아파서 평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을 끄적이는 일이 주저되는 부분이 있다. 그 시기를 겪지 않은 세대이기에 당시의 시대 상황과 감내해야만 했을 고통의 크기가 너무나도 막연한 탓도 있고, 감히 이해할 것 같다는 말로 가벼이 넘기기도 뭣한 까닭이다. 그러나 벌레를 벗어나기 위해 그 시간을 증언하겠다는 작가의 말을 곱씹으며, 작가가 겪어냈던 질곡의 삶과 그런 아픈 시기를 이겨내고자 했던 처절한 몸부림만은 이 두 권 책을 통해 분명하게 기억하려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 | 민음사 지금, 당신은 어느 역에 서 있습니까? 살면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씁쓸한 뒷맛을 심심찮게 맛보곤 한다. 사소한 오해에서부터 중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원인은 실로 다양하다. 하지만 그 모든 원인들을 아우르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나의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이지 못한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우리 각자는 독립적 자아를 지닌 존재이기에 매 순간 모든 이들과 한마음일 순 없다. 즉 사람들 사이의 마음과 마음이 늘 조화로울 순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마음과 마음이라는 것은 실상 서로 간의 상처와 아픔으로 연결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인간 관계란 애당초 용서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관계를 영속시킬 수 없는 것은 아닐는지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순례의 ..
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 샘터사 장영희 문학 에세이 저자가 들려주는 문학 세계를 통한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 앞으로 올곧게 살아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되리라 기대하며.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려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 p.318 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지음/샘터사
그 남자네 집 | 박완서 | 세계사 사랑이 사치가 되던 그 시절, 구슬 같던 첫사랑 이야기 『친절한 복희씨』라는 소설집을 보면, 「그 남자네 집」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있다. 이미 박완서 작가의 장편 『그 남자네 집』을 읽었던 터라 읽으면서도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알고 보니 단편 「그 남자네 집」은 2002년 여름호『문학과 사회』에서 처음 발표했던 단편이고, 2년 뒤에 이를 기반으로 살을 붙인 동명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7년 출간한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에는 단편 「그 남자네 집」이 수록된 것이고. 『그 남자네 집』은 주인공이 사는 동네로 그 남자네가 이사 오면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말하자면, 주인공과 그 남자는 서로의 첫사랑인 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단순히 첫사랑을 그린 소설로 치부하..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 열린책들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지상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스물다섯 차례의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광기 어린 천재,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의 삶을 그리고 있다. 최고의 향수를 만들겠다는 일념이 빚어낸 그의 녹록지 않은 삶의 여정이 굉장히 속도감 있게 전개가 되고 있어 지루할 틈 없이 빠져든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무엇보다 결말이 꽤 인상적이다. 그루누이가 자신이 만든 향수를 온몸에 뿌리자, 부랑자들이 몰려들어 그의 육신을 없앤다는 설정은 파격적이면서도, 삶에 대한 인간 존재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결말인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고 싶어 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 특히나 혐오하는 대상에 조차 인정 받고자 하는 우리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애처로움마저 느껴지는 건 비단 나뿐..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미치 앨봄 | 살림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열네 번의 인생 수업 평온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일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땐,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찡해지면서 눈에 눈물이 고이고…. 모리 교수가 남긴 소중한 이야기를 가슴 한 켠에 담아두기로 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 그의 이름, 모리 슈워츠(Morrie Schwartz). "내가 이 병을 앓으며 배운 가장 큰 것을 말해 줄까? 사랑을 나눠 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 p.75 "인생은 밀고 당김의 연속이네. 자넨 이것이 되고 싶지만 다른 것을 해야만 하지. 이런 것이 자네 마음을 상하게 하지만 상처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자넨 너무나 잘 알아...
입 속의 검은 잎 | 기형도 | 문학과지성사 詩作 메모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1988.11) 비관이 난무하다 그것은 시대의 우울함이자, 상처 받은 청춘의 우울함이다 그럼에도 그는, 우울한 현실 속에서 망설이기보다 차라리 단호했다 그 단호함 뒤에 감춰진 슬픔과 고통을 감지하게 돼버린 순간, 심히 동요할 수밖에.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
KBS 명작 스캔들 | 민승식(기획)·한지원(글) | 페이퍼스토리 도도한 명작의 아주 발칙하고 은밀한 이야기 KBS에서 작년 상반기까지 방영되었던 교양 프로그램 을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다. 꼬박꼬박 챙겨봤던 건 아니었지만, 간간이 지나가면서 흥미로운 작품을 소재로 할 때는 꽤나 몰두해서 보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나는 몇몇을 꼽아보면 쇠라의 나, 벨라스케스의 , 그리고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는 드가의 이야기 정도가 머리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책으로도 발간된 걸 최근에야 알고, 틈틈이 한 작품씩 읽어봤다. 그중 하나, 일상의 절묘한 순간을 포착하여 예술로 승화시킨, 일명 '결정적 순간'으로 대표되는 앙드레 카르티에-브레송. 대표작인 는 그야말로 결정적 순간을 담고 있다. 생 라자르 역 뒤편에서 물이 고인 웅덩이를 뛰어 넘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담은 이 사진은 담벼락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