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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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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 작가정신 우리 시대의 영원한 이웃, 박완서를 다시 만나는 시간 삶의 진리가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드러난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 담긴 48편의 짧은 소설이 그렇다. 1970년대 한창 분주하게 산업화를 추진해가던 시기와 맞물린 급격한 사회 변화 안에서 대개의 사람들은 넘실대는 시류에 편승해 가장 현대적인 것에 안착하고자 제 나름의 애를 썼다. 그 안간힘 속에서 계속되는 나날은 반세기를 훌쩍 흐른 오늘에 바라보아도 그리 이질감을 느낄 수 없다. 그것은 어느 시대 건 뒤쳐지지 않고 첨단의 것을 온전하게 누리길 바라는 이들의 욕구와 열망이 전연 다르지 않고, 무엇보다 사랑과 결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란 사람을 기준으로 내가 맺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라는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할..
장미의 이름 | 움베르토 에코 | 열린책들 20세기 최대의 지적 추리 소설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1327년 11월의 어느 일주일 간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다. 첫날의 아델모를 시작으로 밤 사이 죽임 당한 채 시체로 발견되는 수도사들이 늘어갈수록 의문은 커져만 가는데, 영국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박식한 수도사 윌리엄과 그의 필사 서기 겸 시자로 시봉된 이탈리아 멜크 수도원의 젋은 베네딕트회 수련사 아드소가 이야기의 중심에서 미궁에 빠진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고군분투한다. 그 안에서 7일이라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전개되는 치밀한 구조가 단연 인상적인데, 사건의 주동자는 물론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 위한 이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대결이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더욱이 각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생생한 묘사는 이야기의 시작에 앞서 살..
한때 소중했던 것들 | 이기주 | 달 지금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지난날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 것들이다 산문집 제목인 ‘한때 소중했던 것들’을 조그마니 따라 읽자니 그 뒤로 말줄임표가 길게, 아주 길게 늘어서고 만다. 그 점점이 늘어선… 뒤에 숨은 것은 필시 한때 소중했던 것들에 대한 아련함과 진한 아쉬움이 한데 뒤섞여 뭉글해진 감정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런 감정들이 마음속에서 아예 깨끗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말줄임표는 오늘도, 내일도 어쩌면 영원히 이어지지 않을까. 이기주 작가의 『한때 소중했던 것들』에 담긴 글들은 그 말줄임표 뒤에서 한창 서성이고 있는 감정의 날 것, 혹은 그 한참 뒤에 남은 어떤 잔여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랄 수 있겠다. 대개는 지난날의 기쁨과 행복, 안도의 대상들이 이제와 도리어 슬픔과 좌절, 상실이 되어 비수로 꽂히..
世界は終わらない(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 益田ミリ | 幻冬舍 마스다 미리, 남자들의 마음을 이야기하다!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 하면 자연스레 수짱으로 대표되는 여성 주인공을 떠올리게 한다. 여태껏 여자들의 심리를 섬세하고도 유쾌하게 대변함으로써 많은 공감을 산 덕분이리라. 그런데 이번에 만난 만화 에세이 『世界は終わらない』는 조금 달랐다. 32세 독신 남성인 쓰치다를 주인공으로 하여, 남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풀어 나가고 있는 이유다. 낮에는 서점에서 일하며 책 진열 및 정리는 물론, 고객이 찾고 있는 책을 돕거나 추천한다. 업무 중에 혹여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웃 서점을 살피며 생각을 구체화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동료나 상사를 설득하고자 분투하는 일에도 충실하다. 나아가 일상의 대부분을 서점에서 보내며 ‘책’을 매개로 일상의 자신..
착한 여자의 사랑 | 앨리스 먼로 | 문학동네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 앨리스 먼로가 보여주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탐색과 통찰! 얼마간은 비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무엇도 쉬이 단정 짓지 않는다. 비슷한 선상에서 절대적이라는 말 역시 신뢰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모호한 것 투성인 삶이 가지는 속성과 불완전한 인간 존재의 본성에서 기인한다고 여기면서. 앨리스 먼로가 1998년 발표한 이 단편집에 엮인 여덟 편은 그것에 대한 이야기랄 수 있겠다. 절대적으로 선한 이도, 악한 이도 존재하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로 채워진 세계 안에서 그들은 단지 어떤 상황 하에 놓여있을 뿐이다. 때론 순조롭기도 어떤 때에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그 흐름에 적당히 몸을 맡긴 채로 살아간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시작으로 『미움, 우정, 구애..
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 | 스펜서 존슨 | 인플루엔셜 성장을 가로막는 낡은 신념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가능성이 통째로 열린다! ― 이제는 도무지 무용해 보이는 것조차 끌어안은 채 ― 미로를 헤매는 꼬마인간 헴은 스스로의 지난날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내 안의 어떤 신념은 설사 어딘가가 잘못됐다는 마음 한구석의 의구심 조차도 고요하게 잠재울 수 있을 만큼 공고하게 자리함을 목격한 이유다. 말하자면, 기존의 신념으로 내가 서있는 미로를 벗어나는 것이 합당하고 마땅하다고 여겨온 것인데, 물론 그런 호기가 아예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만도 아니었다. 그러나 독이 되었던 경우가 그 보다 무수히 많았고, 그럼에도 이를 쉬이 간과하고 외면해 왔음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태껏 철석같이 믿어왔던 신념의 끈을 놓아버리는 순간, 나란 존재의 정체성마저 ..
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 | 난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 황현산 ▒ 2019/02/09 - [별별책] -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은 흥미롭다. 더욱이 그 시선의 끝에서 어떤 신세계를 발견했을 땐 황홀 하달 수 byeolx2.tistory.com 우리 문학과 우리 사회가 믿는 우리 미래의 힘과 깊이가 바로 그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황현산의 생애 첫 산문집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저자가 유명을 달리한 후에야 그의 두 번째 산문집이었던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읽었다. 아주 자연스레 스미듯 정독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바탕하지 않고는 쓰일 수 없는 글인 이유였다. 더불어 적재적소의 어휘 선택과 깔끔하면서도 단호한 문체는 한층..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박준 | 난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시인 박준, 그의 첫 산문집! 시인의 눈을 좋아한다. 사람과 사물,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깃든 순수함과 때때로의 통찰을 신뢰한다. 최근 박준 시인이 펴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와 함께하면서 그의 눈이 좇는 세상을 한껏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가난이 있고 외로움과 쓸쓸함이 있었고, 죽음이 자리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그해 어느 지난날의 기억이 존재했다. 그것은 쉽사리 잊을 수 없어서 곱씹을 수밖에 없는 기다림과 초조, 상처와 아픔, 기대와 바람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산문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가을에 만났던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가 그랬듯,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