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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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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 송정림 | 꼼지락 쉼표를 전하는 작가 송정림이 전하는 참 예쁜 우리들의 시행착오 서점에 가면, 제목만으로도 지금 내 심정을 귀신같이 알아맞히는 책들이 여럿 눈에 띈다. 매우 이성적이다 못해 시니컬한 대부분의 날에는 그런 말 몇 마디로 해결될 일이냐며 내심 묘한 반발심을 일으키곤 하는데, 그러면서도 때때로 그런 책들 앞을 서성이며 기웃거리는 자신을 문득 알아채고는 열 쩍어 하는 날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라도 읽은 책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 역시나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덮어버리는 경우가 팔 할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던 책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그중의 하나가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시리즈였는데, 저자 개인의 경험이나 주변 사람들의 일화에서 가져온 담백한 이야기들이 살며시 미소 짓게도 하고..
레몬 | 권여선 | 창비 레몬, 레몬, 레몬, 복수의 주문이 시작되었다 레몬의 노란 빛깔은 이를테면, 지지부진하고 때로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삶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에 대한 상징이다. 그렇기에 ‘레몬, 레몬, 레몬 읊조리던 주문은 곧, 삶의 숭고함을 가리는 것들로부터의 최후의 안간힘 같은 것은 아닐는지. 소설 『레몬』은 쉬이 놓지 않고 붙들려는 삶을 향한 의지, 그 속성에 대한 이야기다. 발단은 해언의 두부 손상으로 인한 사망에서 비롯한다. 그로 인해 그녀 주변의 인물들, 그러니까 그녀의 동생 다언과 친언니보다 더 가깝게 지내던 상희,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한만우는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삶의 균열 안에서 적잖은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사건 발생으로부터 8년이 지난 뒤에서야, 다언은 한만우..
여행의 이유 | 김영하 | 문학동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여행지에서 겪은 에피소드에서 나아가, 여행 전반을 아우르는 사유를 시도하는 데에 한결 매력적인 산문집이다. 이야기의 출발은 작가 개인의 사적인 경험에서 비롯하지만, 삶을 향해 뻗어가는 흐름 안에서 개인을 넘어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치환되는 까닭이다. 동시에 여행지에서 스친 단상들이 쌓이고 쌓여 한 편의 산문으로 완성되기까지 공들인 노고의 글쓰기가 제대로 빛을 발한 이유도 더해졌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 안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여행’에 관하여 생각해 볼 여지를 선사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p.207) 말하는 작가가 전하는 여행 이야기라서 한층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혼자여서 괜찮은 하루 | 곽정은 | 해의시간 스스로를 사랑하며 성장하는 법에 대한 곽정은의 아주 사적인 고백 혼자 있는 시간의 가치를 헤아리는 일이 부쩍 많아진 시대다. 그것은 대개 부대끼며 살아가는 무리 안에서 쉬이 사라져 버리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고민에서 기인한다. 애초의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어떤 상황이나 그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자연스레 오롯한 나로서 존재할 얼마간의 시간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친 몸과 마음의 치유, 재충전을 위하여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려는 태도는 자기 자신을 보듬는 것은 물론 앞으로의 나날을 도모하고자 하는 고양된 마음이기도 한 것이다. 때로는 그 시간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이들의 시선과 말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지키려는 까닭, 그것은 더 나..
밀라노, 안개의 풍경 | 스가 아쓰코 | 문학동네 베네치아의 종소리 | 스가 아쓰코 환상의 시간은 언젠가 어쩔 수 없이 현실로 회귀한다 끝없는 사유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청춘의 초상 『밀라노, 안개의 풍경』,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에 이어 집어 든 『베 byeolx2.tistory.com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 스가 아쓰코 밀라노, 안개의 풍경 | 스가 아쓰코 기억 속 밀라노에는 지금도 안개가 고요히 흐르고 있다 안개 자욱한 밀라노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자니, 자연스레 한 여인이 배경 안으로 들어온다. 그 byeolx2.tistory.com 기억 속 밀라노에는 지금도 안개가 고요히 흐르고 있다 안개 자욱한 밀라노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자니, 자연스레 한 여인이 배경 안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말간 눈동자를 반짝이며 조근한 목소리로 자..
내가 있는 곳 | 줌파 라히리 | 마음산책 대부분 외롭지만, 가끔은 온기를 느끼고 가끔은 온전히 나의 것으로 누릴 수 있는 순간의 기억들 어떤 장소에서 마주한 상황,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과 그것의 미묘한 변화가 짤막한 이야기 안에 응축돼 있다. 다소 쓸쓸해 보이지만 그 고독을 쉬이 포기할 수 없어 보이는 ‘그녀’가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이다. 그녀의 발길이 닿는 곳을 따라 장소는 계속 바뀐다. 그리고 그 공간들은 그녀가 일상을 영위하는데 스치고 잠시 머무는, 때로는 한동안 머물기도 하는 평범하고도 친근한 장소들이다. 이를테면 그녀의 집과 집 근처 보도, 공원, 다리, 광장이 배경이 된다. 서점과 박물관, 수영장과 뷰티숍, 슈퍼마켓, 카페, 역 등도 등장한다. 그러나 그녀의 짤막한 이야기 속 배경은 흐려 보인다. 그저 그 장소에 놓인 그녀와 때때로..
따뜻함을 드세요 | 오가와 이토 | 북폴리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기분 나쁜 일도 괴로운 일도 그때만큼은 전부 잊을 수 있으니까 소중한 사람과 한 식탁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시간이 또 어딨을까. 여기 엮인 일곱 편의 이야기는 너무도 당연해서 쉬이 잊고 마는 일상 속 행복의 진리를 마주하게 한다. 나아가 마음 한 켠을 따뜻하게도 든든하게도 만드는데, ‘그녀의 소설은 다 읽고 난 뒤에 “잘 읽었습니다” 대신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해야 할 것만 같다.’고 말한 옮긴이의 말에 십분 공감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에서다. 치매로 요양원에 모신 할머니가 식음을 전폐하자 한달음에 후지산을 닮은 빙수를 구해온 손녀와 요코하마 주카가이의 낡았지만 생전 아버지가 칭찬해 마지않던 음식점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프..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 유현준 | 와이즈베리 우리를 품은 도시에 말을 건다는 것 ‘머릿속으로 별자리를 되짚어본다. 나를 형성한 공간은 어디인가.' (p.411) 저자는 유년 시절의 최초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 시점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형성한 공간들을 순차적으로 되짚어본다. 나아가 현재 발 딛고 있는 이 도시에서 애착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는 공간, 이를테면 한남대교 다리 밑이나 잠수교, 한강시민공원과 영화 감상 후 집까지 사색하며 걷기에 최적인 곳에 자리한 CGV, 동네 놀이터, 창가 스툴 자리와 침대를 거실로 옮겨보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 예찬의 시선을 좇는 일이 자못 신선하고도 흥미롭다. 그것은 한 개인의 은밀한 사적 시선인 동시에 건축가적 감수성이 보태어져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도모하게 하는 이유가 아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