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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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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 이해인(글)·이규태(그림) | 샘터사 떨어져 있어도 가까운 마음으로 그리움 담아 전하는 글 이해인 수녀가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해 온 우정에 대한 글을 모으고 여기에 새로이 쓴 글을 더해 한데 엮은 책, 『친구에게』. 코로나19로 인한 생활 속 거리 두기가 한창인 요즘이어서 한결 애틋하게 다가오는 글들이다. 더욱이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친구와의 추억을 상기하게 하는 서정적 그림이 보태져 한층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데운다. 때때로 사람들은 무언가를 잃고 서야 소중함을 깨닫고는 하는데, 이 힘든 시기가 꼭 그 연속인 것만 같다. 하지만 어쩌면 그동안 어떠한 의심도 없이 누려온 일상의 모든 것들이 전복돼 버린 지금이야말로 소중히 대해야 했음에도 소홀히 했던 것들을 그러모아 다시금 품을 수 있는 좋은 기회 인지도 모르겠다. 그 중의 하나가 아끼는 ..
그 사랑 놓치지 마라 | 이해인 | 마음산책 수도원에서 보내는 마음의 시 산문 이해인 수녀님의 글을 마주할 적이면, 곧잘 고해소 앞에 선 심정이 되곤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상기시킴으로써 지난날의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혼자 가만히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 다짐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시간들은 잠시 방황하고 주춤했던 나를 슬며시 깨운다. 마치 보석을 마친 뒤 한결 말갛게 씻긴 내가 되어. 이 모든 것은 수녀님의 시와 산문이 선사하는 신비랄 수밖에. 올해 연말과 내년의 연시도 수녀님의 새로운 책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살아갈수록 말을 더 조심조심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 삼아 가볍게 던진 말이 커다란 오해의 무게로 돌아와 상처 받고 눈물 흘린 시간들이 제게도..
혼자가 혼자에게 | 이병률 | 달 “왜 혼자냐고요. 괜찮아서요.” 이 세계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일, 나는 그 비결을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 적어도 시작은 거기에서부터 라야 한다고 – 믿고 있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의 가치를 신뢰하는 연유다. 그것은 곧 살아갈 날들의 지평을 견고하게 다져가는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므로. 그러므로 거친 비바람에도 쉬이 뽑히지 않는 뿌리를 내리는 동시에 무성한 잎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 할 이 시간들을 늘 고대하고 있다. 사실 나는 혼자이기보다는 둘이거나 셋, 그 이상이기를 바랐다. 혼자 있는 것에 도무지 익숙지 못한 데다가, 어떤 때에는 두렵기까지 했으니까. 그런데 그랬던 내가 철저하게 혼자이기를 갈망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에 내가 느꼈던 스스로에 대한 낯..
꽃의 파리행 | 나혜석 | 알비 조선 여자, 나혜석의 구미 유람기 ‘나혜석(1896-1948)’이라는 이름에 붙는 수식어는 실로 다양하다. 개인적으로는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던 나혜석을 꽤 오랜 시간 알아 왔다. 그녀가 일본 도쿄로 건너가 정식으로 서양화를 배운 최초 여학생이라는 이력은 눈여겨볼 만 한데, 더욱이 출중한 실력으로 입선하며 개인전을 여는 등의 꾸준한 활동은 여성이라서 한층 제약이 심했던 당시 사회적 흐름 안에서 차라리 특이에 가깝다. 근래에는 페미니즘 열풍과 맞물려 페미니스트로서의 나혜석이란 존재, 그녀의 삶이 보다 주목받고 있는 듯하다. 딸이고 아내이자 며느리이며 엄마이기도 한 여성을 논하기 전에 그저 한 명의 사람임을 주장했던 그녀는 그런 생각을 시와 소설 등을 통해 거침없이 표현했는데, 이런 활동들이 회자되면서..
연필로 쓰기 | 김훈 | 문학동네 연필은 나의 삽이다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 세월의 풍파를 거쳐온 노작가의 사람과 사회를 향한 지극한 관심이 『연필로 쓰기』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에 선보였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산문들을 만나며, 연륜에서 나오는 혜안과 통찰력에 한 번, 문장과 문장 사이에 깃든 화해와 포용의 씀씀이에 두 번 감탄했다. 그야말로, 삶을 향한 애정 없이는 쓰일 수 없는 글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작가는 앞서 알림을 통해 밝힌 ‘나는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 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생활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을 구태여 골몰하고 정리하여 원고를 써내는 행위가 얼마나 고된 일일지 감히 헤..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 마음산책 누군가 오래 본 문장, 누군가 오래 볼 문장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 이젠 조금 알 것도 같다. 아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렇게, 그냥 그 정도로만. 그럼, 다들 잘 지내시기를.’(p.239)이라 맺고 있는 문장의 구두점을, 나는 한참을 응시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청춘(靑春)에 고하는 이별사(離別辭)와도 같이 들렸으므로. 나의 청춘도, 당신의 청춘도 잘 지내시라는 짤막한 당부의 말이 담백하고도 담담했지만, 그 바람의 마음은 어쩐지 불어오는 바람처럼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그래서 오로지 피부결에 와닿아야지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어서 한층 적막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집 막내였던 녀석과 함께 했던 산책길을 혼자 거닐다가 그 언저리에 있는 벤치에 앉아 읽고 있던 참이었다. 문득 그 녀석..
수인(전2권) | 황석영 | 문학동네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황석영이 몸으로 써내려간 숨가쁜 기록 황석영은 만주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가족과 월남한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뉜다. 학창 시절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랑의 시기를 보내다, 해병대로 입대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다. 유신체제를 반대하고, 광주항쟁과 6월 항쟁을 겪으면서 나라의 민주화를 바라며 급진화한다. 이후에는 방북과 망명에 이은 수인 생활을 한다. 굴곡진 시대가 몰고온 소용돌이에 갇혀있던 한 개인의 몸부림이 고스란히 대한민국 현대사로 박제됐다. '수인(囚人)'의 이름으로 엮은 두 권의 책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그의 삶에서 방북은 오로지 본인 의사에 따른 결정이었지만, 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