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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9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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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누군가 오래 본 문장, 누군가 오래 볼 문장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 이젠 조금 알 것도 같다. 아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렇게, 그냥 그 정도로만. 그럼, 다들 잘 지내시기를.’(p.239)이라 맺고 있는 문장의 구두점을, 나는 한참을 응시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청춘(靑春)에 고하는 이별사(離別辭)와도 같이 들렸으므로. 나의 청춘도, 당신의 청춘도 잘 지내시라는 짤막한 당부의 말이 담백하고도 담담했지만, 그 바람의 마음은 어쩐지 불어오는 바람처럼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그래서 오로지 피부결에 와닿아야지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어서 한층 적막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집 막내였던 녀석과 함께 했던 산책길을 혼자 거닐다가 그 언저리에 있는 벤치에 앉아 읽고 있던 참이었다. 문득 그 녀석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곧 나에게도 청춘의 한창이었음을 깨달았다. 녀석 없이 혼자 나온 산책길이 처음인 것도 아닌데 젊은 날에 안녕을 고하는 인사를 마주하자니, 잔잔한 호수 위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의 파장처럼 고요했던 마음이 순간적으로 일렁이고 말았다. 나는 그 마음이 잠잠해지기를, 가만히 구두점을 응시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인생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막이 존재함을 불현듯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소설 『그 남자의 집』에서 ‘행복을 과장하고 싶을 때는 이미 행복을 통과한 후이다.’ 라 했던 박완서 작가님의 명문이 떠올랐다. 그것은 곧 ‘이미 그 한가운데 있지 않았다.’는 앞 문장을 전제한다. 나아가 ‘청춘이 생략된 인생’이 결코 아니었음을, 그 시기를 함께한 누군가가 분명하게 존재했었기에 지금 와 현실 아닌 추억을 감사하고 탐닉할 수 있음에 대한 고백이기도 했다. 나는 이 문장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곱씹으면서 청춘이 생략된 인생에 대하여 한동안 골몰한 적이 있었다. 단조롭고 따분하기 그지없다고 여긴 그 시기의 내가 자칫하면 그런 인생을 살 수도 있겠다는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이었으리라. 젊은 날의 조바심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더 훗날의 나는 오늘의 ― 조금은 아쉽고, 그것만큼 쓸쓸하고, 조금 많이 그리워하는 ― 나를 어떻게 여길지 새삼 궁금해진다.

 

인생을 살아갈수록 조금 알 것도 같으면서도, 어느 날엔가는 도통 알 수 없다고 푸념하기도 하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청춘인 이유라 믿고 싶다. 한창은 아니지만 그저 한참을 보내고 있다고, 그냥 그 정도로만.

 

 

 

인간의 삶은 이토록 짧아서 슬픈 것이지만, 이제는 사라진 누군가를 평생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에 과거의 세계와 미래의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마치 같은 책을 읽는 두 눈동자가, 같은 기도문을 읊조리는 입술이 우리의 세계를 좀더 지속시키는 것과 같이.    - p.18 특별판 작가의 말

 

 

 

 

 

청춘의 문장들 - 10점
김연수 지음/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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