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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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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아는 사람 | 유진목 | 난다 유진목의 작은 여행 “여행자가 되어 분노를 잠재워볼 심산이었다”(p.207)는 저자는 “하필 하노이였던 것은 그곳의 모든 음식이 맛있기 때문이”(p.207)라고도 덧붙였다. 그 세 번의 여행을 통한 에세이 『슬픔을 아는 사람』은 저자가 혼자서 낯선 곳으로 떠나 심신을 달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조용하고도 격렬한 사투를 벌이고 있던 나날의 기록이다. 그런 까닭에 설렘과 즐거움 일색인 기존의 여행 에세이와는 아주 다른 결의 글들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러나 여행이란 모름지기 지친 일상을 잠시 세워 두고 삶의 활력을 되찾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기도 함을 떠올려 봤을 때, 어쩌면 이 편이 보다 현실적인 여행의 감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슬픔의 미덕을 아는 사람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그 좋았던 시간에 | 김소연 | 달 나 여기에 좀더 있으려고 해 일찍이 감탄해 마지않았던 『마음사전』의 ‘마음’ 낱말 정의가 한층 돋보였던 것은 시인 특유의 감수성과 예리한 통찰력에서 연유한다. 그렇기에 시인이 떠났던 여행에 뒤늦게나마 동행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모로 여행이란 감수성이 더해져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고 깊은 통찰력이 바탕돼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 마련이니, 시인의 여행길이 몹시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손에 넣은 여행 산문집이었다. 그러나 어찌 된 까닭인지 책장에 두고 어언 삼 개월이 흘렀다. 코로나(COVID-19)라는 전례 없는 어려움 속에 여행이 아득히 먼 일이 돼 버린 이유라고 치부하기에는 어찌됐든 나의 의지로 이 책을 손에 쥐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변덕..
꽃의 파리행 | 나혜석 | 알비 조선 여자, 나혜석의 구미 유람기 ‘나혜석(1896-1948)’이라는 이름에 붙는 수식어는 실로 다양하다. 개인적으로는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던 나혜석을 꽤 오랜 시간 알아 왔다. 그녀가 일본 도쿄로 건너가 정식으로 서양화를 배운 최초 여학생이라는 이력은 눈여겨볼 만 한데, 더욱이 출중한 실력으로 입선하며 개인전을 여는 등의 꾸준한 활동은 여성이라서 한층 제약이 심했던 당시 사회적 흐름 안에서 차라리 특이에 가깝다. 근래에는 페미니즘 열풍과 맞물려 페미니스트로서의 나혜석이란 존재, 그녀의 삶이 보다 주목받고 있는 듯하다. 딸이고 아내이자 며느리이며 엄마이기도 한 여성을 논하기 전에 그저 한 명의 사람임을 주장했던 그녀는 그런 생각을 시와 소설 등을 통해 거침없이 표현했는데, 이런 활동들이 회자되면서..
여행의 이유 | 김영하 | 문학동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여행지에서 겪은 에피소드에서 나아가, 여행 전반을 아우르는 사유를 시도하는 데에 한결 매력적인 산문집이다. 이야기의 출발은 작가 개인의 사적인 경험에서 비롯하지만, 삶을 향해 뻗어가는 흐름 안에서 개인을 넘어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치환되는 까닭이다. 동시에 여행지에서 스친 단상들이 쌓이고 쌓여 한 편의 산문으로 완성되기까지 공들인 노고의 글쓰기가 제대로 빛을 발한 이유도 더해졌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 안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여행’에 관하여 생각해 볼 여지를 선사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p.207) 말하는 작가가 전하는 여행 이야기라서 한층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 컬처그라퍼 모든 게 끝났으니 진짜 여행은 이제부터 올여름은 비행기 티켓 창을 열어두고 한참을 골몰하다가 허무하게 닫기를 수 차례 반복하는 동안 저만치 물러간 느낌이다. 그런 나날의 분주하고도 집요하게 움직이던 나의 검지 손가락은 더위를 핑계 삼아 잠시 어디론가 떠나려는 속셈이 다분했다. 그런데 숨 막히던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그럭저럭 한 바람이 스치면서 더 이상 같은 이유로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기에는 멋쩍은 상황이 오고 말았다. 그렇게 흐지부지된 상황에서 집어 든 『언젠가, 아마도』. 김연수 작가가 4년에 걸쳐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에 연재한 글에 새로운 글 8편을 추가해 엮은 여행 산문집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행지의 각종 정보와 그곳에서의 체험담을 생생하게 적고 있는 여행기를 기대했다면..
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 | 마스다 미리 | 이봄 한 번뿐인 인생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마흔 살이 됐을 때, 문득 ‘아름다운 것을 많이 봐 두고 싶다.’는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하는 그녀.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마흔 한 살부터 마흔 여덟 살까지 계속된다. 오로라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출발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를 시작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이라는 테마로 떠난 독일, 몽생미셸이 있는 프랑스와 리우 카니발 축제의 브라질, 핑시 풍등제가 열리는 타이완이 그 결심의 여행지들이다. 평소 동경하면서도 좀처럼 떠나기 힘들었던 곳들을 더 늦기 전에 떠나보자고 용기 내 감행에 나선 것이다. 단, 혼자 떠나는 여행인 데다가 언어와 체력 문제가 있기에 가이드가 동행하는 패키지 투어를 이용하기로 한다. 그렇게 약 십 년에 ..
끌림 | 이병률 | 달 '길' 위에서 쓰고 찍은 사람과 인연, 그리고 사랑 이야기 일상의 경계 바깥에서 바라보는 사람과 풍경에 대한 김병률 시인의 감성을 좋아한다. 그 첫 시작은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했던 여행 산문집 『끌림』이었다. 이후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망설임 없이 집어 들을 수 있었던 고마운 책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교보에서 리커버 에디션으로 재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다시 읽어도 보고 소장도 할 겸 구입해 보았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끌림』은 확실히 이전과는 다르게 끌렸다. 이전의 나는 조금 더 젊었고,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도 숨길 수 없는 호기심으로 꿈틀댔다. 새로운 방식의 여행을 갈구했고 그것은 혼자서 떠나는 것을 전제로 했다. 그러므로 그 시기의 『끌림』은 습..
아이처럼 행복하라 | 알렉스 김 | 공간의기쁨 나는 아이들이 사는 곳에 초라한 학교를 하나 지어주었지만, 아이들은 나의 가슴속에 멋진 '행복학교'를 지어주었습니다. #. 01 아이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눈동자가, 구김살 없는 천진난만한 웃음이 진심으로 부럽다고 때때로 생각한다. 이미 어른이 돼버렸지만, 아이처럼 행복해질 순 없는 거냐고. #. 02 티 없이 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환한 미소를 짓는 아이들을 만났다. 어쩐지 이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때가 탔던 마음이 한결 깨끗해진 듯하다. 이 느낌, 참 좋다. #. 03 작가 알렉스 김은 아이의 눈 안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성찰한다고 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몽글몽글한 감정들이 그의 이야기가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말이고 의미인지, 아주 자연스럽게 수긍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