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별책/2021

그 좋았던 시간에 | 김소연 | 달

반응형

 

[이미지 출처 - 알라딘]

 

 

 

나 여기에 좀더 있으려고 해

 

 

 

일찍이 감탄해 마지않았던 『마음사전』의 ‘마음’ 낱말 정의가 한층 돋보였던 것은 시인 특유의 감수성과 예리한 통찰력에서 연유한다. 그렇기에 시인이 떠났던 여행에 뒤늦게나마 동행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모로 여행이란 감수성이 더해져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고 깊은 통찰력이 바탕돼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 마련이니, 시인의 여행길이 몹시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손에 넣은 여행 산문집이었다. 그러나 어찌 된 까닭인지 책장에 두고 어언 삼 개월이 흘렀다. 코로나(COVID-19)라는 전례 없는 어려움 속에 여행이 아득히 먼 일이 돼 버린 이유라고 치부하기에는 어찌됐든 나의 의지로 이 책을 손에 쥐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변덕이었다고도 말하기도 뭣한 것이, 나는 한참을 망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달까. 책을 펼치는 순간 떠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테고, 그러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그러다가 지난 봄비 내리던 어느 날에 이 책을 펼쳐 들어 앉은자리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다다랐다. 함께 여행하듯 감정의 보폭을 맞춰 천천히 읽고 싶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느린 사람들이 느리게 살아가는 곳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시인, 그곳에서 좀더 머물기를 바랐던 ‘그 좋았던 시간에’ 대한 사색은 지난날 나의 여행, 그때의 한결 자유로웠던 순간들을 추억하게 만드는 동시에 앞으로의 여행길을 고대하게도 만들었다. 더욱이 ‘여행은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p.35)이기도 하지 않나. 그 낯선 모습 안에서 외려 진정한 ‘나’를 만나는 환상의 시간 말이다. 그것을 모르지 않기에 사람들은 기꺼이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고. 어서 그날이 오기를.

 

 

 

시인 정지용은 여행을 ‘이가락離家樂’이라 했다. 집 떠나는 즐거움.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우선 근사한 여행지를 전제하지 않아서 좋다. 그저 집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그 뜻이 좋다. 집을 떠나면 우선 나는 달라진다. 낯선 내가 된다. 낯설지만 나를 되찾은 것 같아진다. 내가 달라진다는 게 좋다. 달라질 수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 무엇보다 좋다.    - p.32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그 좋았던 시간에 - 6점
김소연 지음/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