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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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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알베르 카뮈 | 민음사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 뫼르소가 아랍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던 그 순간을 되뇌어 본다. 레몽에게 휘둘렀던 칼을 재차 꺼내 든 아랍인의 잘못이었을까, 그때에 칼날 위로 강하게 내리쬐던 태양의 잘못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 비록 어떠한 의도도 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 상대가 꺼낸 칼날 위 반사된 빛을 어쩌지 못하고 권총을 꺼낸 뫼르소의 잘못이었을까. 이 일련의 상황은 재판장에서 피고인 측 증인대에 올랐던 셀레스트가 반복하여 말했듯, ‘하나의 불행’이라고 밖엔 설명할 길 없는 아주 지독한 불행의 한 순간이었음에 분명하다. 이후 뫼르소는 모든 자유를 박탈한 채, 사형에 처해질 날만을 기다리는 처지로 전락한다. 그렇게 이 세계에서 영원한 이방인이 돼 버린 뫼르소. 무엇..
충실한 마음 | 델핀 드 비강 | 레모 어둠 속에 내미는 손에 관한 이야기 중학교 선생인 엘렌은 유독 그늘이 보이는 한 학생(테오)이 마음에 걸려 나름의 애를 써보지만 녹록지 않다. 이혼한 부모를 둔 테오는 양 쪽을 오가는 불안한 생활을 이어 가는 처지로 친구 마티스와 마시는 술이 유일한 위안거리다. 마티스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음주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친구인 테오를 모르는 체하지 못한다. 마티스의 엄마인 세실은 아들과 어울리는 테오가 탐탁지 않은 한편 남편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 무렵부터 혼잣말 증세를 보인다. 그리고 이들 네 인물에게는 어린 시절 받은 저마다의 상처가 있다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물론 열두 살의 테오와 마티스에게는 당면해 있는 현재의 문제이기도 한데, 이미 어른이 된 엘렌과 세실 역시 그것을 과거의 일로만 접어..
슬픔이여 안녕 | 프랑수아즈 사강 | arte Bonjour Tristesse 프랑수아즈 사강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슬픔이여 안녕』은 오래전 읽었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통해 감탄해 마지않았던 유려한 심리 묘사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십 대 후반의 소녀 ‘나(세실)’가 아버지의 여자인 엘자와 안 사이에서 마주하게 되는 혼재된 심정, – 이를테면 시기하고 질투하며 분노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상대를 향한 동경과 경외, 감탄의 마음을 품으며, 때로는 은근한 멸시와 조소를 서슴지 않으면서도 연민하고 동정하기도 하는 – 그 예민한 정서적 변화를 날카롭고도 섬세한 필치로 적고 있는 까닭이다. 그 안에서 ‘나’는 결핍과 욕망, 사랑과 실연, 애증과 고통, 상실과 후회를 넘나 들며 혹독한 내적 성장통을 겪는다. 그 와중, 아버지와 재혼을 앞둔 안의 비극적..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 에밀 졸라 | 시공사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 마르셰'를 모델로, 19세기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재현한 에밀 졸라식 자연주의 소설의 숨은 걸작! 19세기 파리의 세계 최초 백화점 ‘봉 마르셰’를 모델로, 당시의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에밀 졸라의 장편소설이다. 그 포문은 연이어 부모님을 잃고 생계가 막막해진 스무 살의 드니즈 보뒤가 두 남동생을 데리고 파리에 있는 큰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큰아버지가 운영하는 직물 전문점이 건너편에 들어선 거대한 백화점 탓에 형편이 기울어 조카들을 맡아줄 여력이 되지 않는다. 때마침 백화점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은 드니즈로 하여금 백화점으로 향하게 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드니즈가 수습 직원으로서 첫 발걸음을 떼며 힘든 노동과 동료들의 따돌림 ..
나무를 심는 사람 | 장 지오노 | 두레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감동적이고 가슴 따듯한 소설 프로방스 지방의 한 고원지대에 아내와 아들을 잃고 혼자가 된 남자, 엘제아르 부피에는 남은 생을 나무 심는 일에 열중하기로 한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나고, 사람들의 탐욕에 황무지가 됐던 땅에는 차츰 나무들이 자라나면서 울창한 숲을 이룬다. 이에 자취를 감추었던 새와 동물,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면서 황폐했던 이전의 모습은 지우고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운 마을로 변모해간다. 이 짧은 이야기에 담긴 한 남자의 세상을 향한 헌신적 삶의 태도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날로 무분별하게 파괴되어 가고 있는 환경에 대한 우려와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사람들의 이기심,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더없이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기도 해서, 나무 심는 남자가 일생을 ..
파리의 아파트 | 기욤 뮈소 | 밝은세상 천재화가의 신비로운 삶과 마지막 그림에 남긴 촌철살인의 메시지! 더없이 간절했던 아버지의 사랑, 더없이 사악했던 연쇄살인마의 복수! 극작가 가스파르 쿠탕스와 전직 형사 매들린 그린은 임대 회사의 실수로 인해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머물게 된다. 마침 그 집은 일 년 전 사망한 천재 화가 숀 로렌츠가 지내던 곳으로,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화가의 자취는 그들을 자연스레 하나의 사건에 몰두하게 만든다. 이맘때쯤이면 의례히 기욤 뮈소의 신작을 만나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파리의 아파트』를 통해 기욤 뮈소와의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이번 신작은 기존 소설에서 보여줬던 로맨스나 판타지적 요소보다는 스릴러적인 측면을 한층 강화한 인상이다. 동시에 심장병으로 거리에서 쓰러져 죽는 순간까지 납치된 아들(줄리안)을 찾아 ..
마법사들 | 로맹 가리 | 마음산책 베네치아 광대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 기록한 모험, 농담, 사랑의 지독한 성장담 『마법사들』은 18세기 말,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떠나 러시아로 이주한 광대 집안의 이야기다. 당시 유럽 사회를 휩쓸던 변혁의 물결 안에서 살아가야 했던 자가 일가와 그 집안의 마지막 후손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인 포스코 자가의 성장과 모험을 주로 한다. 무엇보다 자신보다 겨우 세 살 반 많은 새엄마 테레지나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유년기를 넘어 평생에 걸친 단 하나의 사랑으로 간직하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그가 테레지나와 함께 보냈던 날들을 회고하며 그 시간들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 중 설레도록 근사한 대목이 있어 옮겨 본다. 사는 기쁨으로 대기에 풍선이 한가득 날아오르는 듯한 시간이었고, 말 한 마디, 웃음 한 도막, 심작박동 한 ..
어린 왕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 홍신문화사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어린왕자는 여우를 만나 알게 된 소중한 진리 ―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므로,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것 ― 를 '나'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당부한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위해 소비한 시간 즉,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는 곧,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넌 아직 나에게는 다른 수많은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불과해. 그래서 나에겐 네가 필요없어. 또 너에게도 내가 필요없겠지. 난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