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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6

묘한 이야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봄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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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날카롭고 예리하지만 늘 따뜻했던 삶을 향한 시선

 

 

 

『묘한 이야기』가 여러 책들 사이에서 반짝였던 것은 '이제 아쿠타가와 수상작이 아닌, 진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읽자!'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던 띠지 문구의 공이 컸다. 사실 띠지라는 것이 버리기엔 아깝고, 그대로 두자니 거추장스러운 계륵 같은 존재라고 느낄 적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 같이 독자의 마음을 간파하기라도 하는 듯한 명쾌한 문구가 적힌 띠지라면, 오히려 반갑고 고마울 따름!

 

실제로 서점에서 일본 소설 코너를 기웃거리다 보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라고 선전하는 책을 심심치 않게 마주한다. 얼마 전 읽었던 시바사키 도모카의 「봄의 정원」이 그랬고, 요시다 슈이치의 「파크 라이프」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코미디언 출신의 마타요시 나오키가 「불꽃」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문화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것 역시 기억하고 있을 만큼,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은 생각 이상으로 익숙했던 셈이다. 그런데 정작 아쿠타가와의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던 거다. 그래서일까, 아쿠타가와의 『묘한 이야기』가 한눈에 들어왔던 것이고, 한층 기대감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참고로 일본 다이쇼 시대(1912 - 1926)에 활동했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선집인 『묘한 이야기』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아버지」, 「개구리」, 「거미줄」, 「원숭이」, 「모리 선생님」, 「지옥변」, 「용」, 「귤」, 「오토미의 정조」, 「버려진 아이」, 「묘한 이야기」, 「신선」, 「흰둥이」, 「모모타로」, 「호랑이 이야기」까지 총 15개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

 

각기 제목들에서도 느낌이 오듯 다양하게 등장하는 동물들을 마주하자면, 어린 시절 이후로 만나보지 못했던 전래동화 꾸러미를 선물 받은 듯했다. 인간과 비슷한 혹은 다른 존재로 등장해 때로는 해학적으로 때로는 은근하게 꾸짖어 반성하게도 하는 것이 지혜와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가 말하길~' 혹은 '~이/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라네.' 식의 전개 탓에 한층 친근하면서도 집중력 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도 이번 선집에 담긴 단편의 특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한 편을 읽고, 다른 한 편으로 넘어가는 여백 사이에서 잠시 머물게 하는 묘한 힘을 느꼈던 것은 비단 나뿐은 아닐 것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모리 선생님」과 「지옥변」이었다.

 

 

 

"제군은 아직 인생을 몰라. 그래, 알고 싶어 해도 아직 모르지. 그만큼 제군은 행복한 게야.
내 나이쯤 되면 인생을 바로 알게 되는데, 알지만 괴로움이 많아진다네. 그래, 괴로운 일이 많아."

 

「모리 선생님」은 중학교 시절 임시 영어 교사로 부임했던 노(老)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담은 단편이다. 그는 초라한 행색에 더듬거리는 서툰 말솜씨로 반 아이들에게 비웃음을 당한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하품을 하기도 하고, 소설도 읽으며 노골적으로 얕잡아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고, 모리 선생님은 자취를 감춘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마저 졸업한 그해 겨울,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점원들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모리 선생님과 재회하게 된다. 반사된 거울을 통해 선생님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며, 그제야 없는 실력에 다만 돈벌이를 위해 가르친다고 여겼던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선생님의 진심을 깨닫게 된다.

 

짧지만, 굉장히 가슴 뭉클해지는 글이다. 치기 어린 시절 행했던 행동을 한참이 지나 되돌아봤을 때, 얼굴 붉어지는 경우가 이따금 있지 않은가. 지난날엔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생각 혹은 행위들이 훗날 너무 작은 세계관으로 바라보았던 것임을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는 것과 같다. 「모리 선생님」은 꼭 그런 글이었다. 그때 그 시절, 우리가 놓쳤던 부분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그 깊숙이에 자리한 온기를 비로소 마주하게 하는….

 

 

심심풀이라느니 돈벌이라느니, 이런 세간의 저속한 시선 때문에 우리의 모리 선생님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런 괴로움 속에서도 선생님은 변함없이 의연한 모습으로 저 보라색 넥타이와 중절모로 몸을 단장하고 돈키호테보다도 용감하고 굳건하게 가르침을 계속해왔다. 그리고 때때로 선생님의 눈빛 안에 스쳐 지나던 것은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 그리고 선생님이 대하고 있는 이 세상 전체에 동정을 구하는 애처로운 마음이 아니었을까.    - p.68 「모리 선생님」

 

 

  

"저는 병풍 한가운데에 귀한 가마 한 대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그리고자 합니다."  

 

「지옥변」에 등장하는 요시히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끔찍이도 아끼는 외동딸을 둔 아비이자, 그림 그리는 실력으로는 달리 견줄 곳 없는 뛰어난 화공이었던 그가, 지옥변 병풍을 완성하기 위해 영주님께 부탁했던 청이 뜻밖에도 자신의 딸을 재물 삼아야 했던 비극을 골조로 하는 「지옥변」을 읽자면, 실은 애초부터 그를 온전하게 이해하기란 어느 누구라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요시히데 본인 역시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요시히데라는 인물만을 따로이 생각하자면,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고통스러워하는 딸을 바라보며 참담함을 느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리고자 하는 서슬 퍼런 광기의 모습이 혀를 내두르게 될 만큼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요시히데는 하나뿐인 딸을 잃고, 지옥변 병풍을 완성해 내고야 마는 것이다. 이런 요시히데의 반인륜적 행위를 넘어선 예술가적 집념이 더없이 오싹하게만 느껴지는 건 나뿐일는지……. 결국 요시히데는 이튿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딸에 대한 속죄의 행위인지, 죄책감을 덜고자 한 비겁한 행동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쪽이든 그의 극단적일 수밖에 없었던 선택들에 아쉬움이 남고, 그러함이 한층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변」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인 것은, 너울대는 불길 사이로 사그러지는 여인의 모습이 더없이 몽환적이고, 그 아스러짐에 감탄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한 이유는 아닐까. 가히 「지옥변」 최고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 불기둥 앞에 얼어붙어 있던 요시히데는…… 이상도 하지요? 조금 전까지 지옥의 괴로움을 맛보던 자가 이제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광채를, 황홀한 법열의 광채를 주름투성이 만면에 영주님 앞인 것도 있었는지 팔짱을 끼고 우뚝 서 있는 게 아닙니까? 남자의 눈에는 딸의 괴로운 죽음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저 아름다운 화염의 색과 그 속에 괴로워하는 여인의 모습이 끝도 없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런 광경으로 보였습니다.    - p.112 「지옥변」

 

 

 

 

 

묘한 이야기 - 8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이소영 옮김/봄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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