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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1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전하영 외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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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 01.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전하영

저 멀리 사라지는 두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나’는 스무 살의 자신과 연수 – 그리고 장 피에르 - 를 떠올렸으리라. …한참이 지나고 우연한 찰나에 조우하게 되는 지난날의 나와 그 주변부를 마주하는 일, 그것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는 곳으로. 나를 길들이는 데에 실패한 거대한 시스템의 세계로’(p.56) 다시 향해야만 하는 운명이기에 그 일은 너무도 중요해 보이는 것일까.

 

가끔은 무언가 이야기 같은 것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속도로 내 인생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 p.55

 

 

 

# 02. 「나뭇잎이 마르고」, 김멜라

산에 올라 씨 뿌리는 일, 일명 마음씨 활동은 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이다. 사람과 풍경, 삶을 대하는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연유다. 더욱이 씨 뿌린 장소를 기억하는 대신, 다만 계속적으로 그것을 뿌리고 훗날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길 상상할 따름이다. 그녀가 세상을 향해 품고 있는 어떤 기대도 그 정도쯤이 아닐는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명랑한 소수자가 바라는 딱 그만큼의 바람을 마주한 기분이다.

 

…나무를 보았다. 산비탈에 서 있던, 한눈에도 메마르고 병들어 보이던 나무. 잎을 펼치고 열매를 맺는 일이 고달프다는 듯 꽈배기처럼 몸을 뒤틀며 자란 나무. 다가가 굵은 줄기를 어루만지자 과자 조각처럼 껍질이 부서졌다. 그 껍질 속으로 검게 썩은 속살이 보였다. 그런데도 가지에 달린 잎만은 풍성해 둥근 잎들이 마치 꿀을 바른 듯 윤이 났다. (…) 체와 대니는 먼 훗날 누군가 발견하게 될 산의 비밀을 상상하며 나무 아래 씨앗을 심었다.    - p.109

 

 

 

# 03. 「사랑하는 일」, 김지연

사랑이란 이름으로 옭아매는 많은 것들은 결국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전제되지 않는 한 지속될 수 없다. 설사 계속된다고 한들 그 관계는 위태롭기 짝이 없으리라. 애정을 바탕으로 서로 신뢰하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함께 애쓰는 ‘공동선’이야말로 사랑하는 일의 최선이고 최고임을 새삼 일깨운다. 그것이 이성애이든 동성애이든 간에.

 

가족들을 사랑하는 건 이미 주어진 일 같은 거였는데, 그 사랑을 이어가는 일, 계속해서 사랑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무조건적인 사랑 같은 건 없으니까. 내가 영지를 계속해서 사랑하는 일이 가능한 것은 우리가 합의한 일종의 공동선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이 되고 매일 사랑하는 일을 한다.    - p.150

 

 

 

# 04. 「목화맨션」, 김혜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떤 관계, 그 안의 아이러니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집주인과 세입자라는 명확한 역할 구분은 각자가 필요한 것을 요구하고 때로는 받아내는데 하등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각자의 처지와 그에 따른 속내를 알게 된 순간, -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친밀감은 높아졌을지언정 – 안타깝게도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허물어지는 목화맨션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만옥이 느꼈던 확신, 그 깨달음은 그녀가 끝내 전하지 못한 이사 비용, 두둑한 결혼 축의금으로라도 대신할 걸, 후회했던 일종의 관계에 대한 환멸이 아닐는지. ‘마음의 부채감’(p.173)에 관한 이야기라서 쉬이 읽히나 무겁게 다가온다. 누구도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므로.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복도를 걷는 그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허물어 지는 것이 다만 눈에 보이는 저 낡은 주택들만은 아닐 거라고 말이다.    - p.184

 

 

 

# 05.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박서련

게임에서 이겼음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것은 승리와 동시에 자각해버린 자신의 이중성, 편향된 현실의 냉혹함과 마주한 까닭일 것이다. ‘혜지승’과 ‘NGUM(느그 어미)’로 귀결되는 이 이야기 안에서 일상 속의 나를 대입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최후의 승자는 이미 반쯤 정해져 있는 세계에 놓여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미 그것을 설정 기본값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보다 근원적인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하리라.

 

모니터에는 승리를 알리는 메시지가 뜨지만 당신은 더 이상 승자의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    - p.230

 

 

 

# 06. 「0%를 향하여」, 서이제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생존을 위한 현실 앞에 선 이들의 모습은 사투에 가깝다. 그들은 미련없이 떠날 수도 없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영화판을 서성이는데, 흔히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 갇힌 젊은 날의 우리 각자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소설의 마지막, ‘나’는 이름도 모르는 할머니가 처음 만들었다는 영화를 보러 가면서 문득 ‘멀리, 아주 멀리’(p.289) 가야만 했던 첫 독립영화를 보러 갔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아직도 나는 그때처럼 가고 있었다.’(p.289)는 읊조림 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여정을 떠나고자 하는 그를 응원하고 싶어 진다.

 

나 영화 그만둘지도 몰라. 나는 말했고, 석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분명 좋은 선택을 할거야. 슬슬 하늘이 붉어지고 있었다. 바다 건너, 멀리, 아주 멀리, 해가 보였다. 정동진에서 해가 지는 걸 다 보네. 얼핏, 해가 뜨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p.288

 

 

 

# 07.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한정현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곳에 있든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그것을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야만 한다고 하는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나는 그것이 오늘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함을 새삼 자각한다. “낙관할 것”(p.340)이라는 말이 메아리가 되어 귓가를 맴도는 가운데.

 

“그이도 너도 모두 강한 사람들이야.”    - p.337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10점
전하영 외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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