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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1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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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이곳에 살았던 이들로부터,
이곳에 살아 있는 이들로부터
꿈처럼 스며오는 지극한 사랑의 기억

 

 

 

불의한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인선의 간곡한 부탁으로 경하는 엉겁결에 그녀의 제주 집으로 향한다. 홀로 굶주리고 있을 작은 앵무새 아마를 살리기 위하여.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폭설로 인한 궂은 날씨에도 가까스로 제주 공항에 도착한 경하. 그러나 그녀의 혹독한 여정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입때껏 본 일 없는 무시무시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때때로 고립되는 일이 잦은 중산간 마을에 위치한 경하의 집까지 닿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까닭이다. 더군다나 해는 곧 저물 것이다. 

그때의 막막함, 낭패감, 두려움이 무서운 속도로 내 마음을 장악했다. 이게 정녕 경하의 일이기만 할까, 어쩌면 경하의 험난한 길을 우리 역시 좇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인선이 외로이, 그리고 위태롭게 짊어지고 있던 짐을 이제라도 함께 나눠져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 역시도 곱씹어야만 했다.

‘이 눈보라에 비하면 서울의 눈은 얼마나 고요했던가.’(p.63) 책을 덮으며 눈길 위, 경하의 말을 되뇌어 본다.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 p.325

 

 

 

 

 

작별하지 않는다 - 6점
한강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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