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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3

식민지의 식탁 | 박현수 | 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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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식민지시대 식탁의 배경과 역사
소설을 통해 본 여러 가지 음식의 풍경들

 

 

 

음식을 통해 삶과 시대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여간 흥미롭지 않다. 그것은 음식 자체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지만, 경험하지 못한 시대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어쩌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그 시절 사람들이 즐기던 음식과 그 음식을 내어주던 사람들, 그리고 이들을 아우르던 공간들을 활자로 나마 생생하게 엿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무엇보다 “먹는다는 행위의 온전한 의미를 물으려 했다”(p.5)는 저자의 의도에 시선이 모아졌는데, 식민지라는 엄혹한 시대에도 사람들의 먹고사는 일은 계속 됐고 그 불가피한 지배국 하에서 새로이 유입돼 정착된 식문화는 오늘날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관심이 더 갔는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먹는다는 행위는 일단 개인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지만 그것이 식민지시대에서 라면, 개인을 넘어 민족과 되찾아야 할 나라 전체의 명운이 걸린 그야말로 존립을 위한 행위 중 하나이기도 하기에 그런 지점에서 더욱 흥미가 생기기도 했다.

저자는 식민지시대 발표된 한국소설 속에 등장한 음식과, 그 음식을 팔던 장소에 대한 묘사를 토대로 당시의 음식 풍경을 이야기한다. 가령 1장 이광수의 『무정』에서 영채가 기차 안에서 맛본 샌드위치를 표현한 문장에 주목한다. 특별한 맛은 없지만 짭짤한 고기 맛이 괜찮고 뭔가 운치가 있었다.(p.15)는 문장이 그것. 이를 통해 소설이 발표된 1917년 이미 샌드위치라는 서양 음식이 조선에 존재했고, 그보다 앞선 1880년대 일본에 전해져 에키벤(駅弁)이라는 이름으로 기차역에서 판매되던 도시락의 한 종류였음을 설명한다. 여기에 당시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 포장지나 메뉴판, 광고와 삽화 등의 이미지 자료를 더하고 있는 식이다. 이 외에도 염상섭의 「만세전」,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이상의 「날개」 등 소설 속 음식과 음식을 팔던 장소를 면밀하게 소개하고 있다. 덕분에 적은 돈으로도 비교적 양껏 먹을 수 있었던 주막과 선술집, 국숫집과 설렁탕집을 두루 살펴보는 동시에 고급 요리를 맛볼 수 있었던 조선철도호텔과 미츠코시백화점의 식당, 그리고 커피나 홍차, 칼피스나 라무네, 코코아 등 음료와 과자류를 팔던 낙랑파라, 경성역 티룸, 낙원정 카페, 명치제과까지, 당시의 모습을 자연스레 녹여낸 문장 안에서 만나는 음식 이야기여서 한층 흥미롭게 다가왔다. 다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환구단을 허물고 대륙 진출의 저의 속에 지어진 조선철도호텔과 일본 식민지시대에 처음 소개된 샌드위치와 라이스카레, 런치와 정식 등 기호나 취향 등을 통해 식민지인들에게 스며(p.68)든 일상의 내면화를 확인하는 일과 상통한 것이기도 해서 씁쓸함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이상하리 만큼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에 대한 호기심을 곧잘 품곤 한다. 문득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을 걷다가,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옛 서울역 건물이나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을 바라보며, 때로는 이문 설렁탕과 같이 아주 오래된 음식점에 발을 디딜 때면 늘 자연스레 시간을 거스른 옛 모습, 그때의 사람들과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식이다. 이 책은 그런 나의 빈약한 상상 속 공백들을 메꿔 주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거칠게나마 음식점에 들어가 주문하는 모습과 그 음식이 제공되는 과정을 눈앞에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 등장한 식탁은 식민지 조선이라는 퍼즐 혹은 모자이크의 한 조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조각들이 하나씩 집적되어 나갈 때 근대 혹은 그것을 이루었던 삶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 p.7

 

 

 

 

 

식민지의 식탁 - 10점
박현수 지음/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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