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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3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이미상 외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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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 01.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이미상

오래전 겨울날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이 함께했던 짧은 여행은 각자의 뇌리 속에서 저마다 잊히지 않을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아가 어느 한순간을 너머 통으로 봉인돼 기억의 방에 자리할지도 모를 일이다. 가령 무경이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하고서 “고모의 그 일을, 내가 했어요.”(p.38) 했을 때 고모는 “너는 내 딸이구나.”(p.38) 했고, 그 순간 난생 처음 존댓말로 목경이 “고모, 나 열나요.”(p.38) 했던 순간이 그렇다. 무경의 ‘한 방’에 대한 목경의 본능적 위기의식이 표출되던 때…. 훗날 고모의 상중 들른 카페에서 목경이 소설에 대해 말하고 있는 여자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그 겨울을 자연스레 떠올렸으리라 짐작해본다. 손 잡고 살 비비며 고모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자신과 무덤덤하지만 확실하게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 냈던 무경에 대하여.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에 대한 이야기였을까.

고모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사람들은 시간을 벌었다.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이 (결코 하고 싶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럭저럭 하기 싫은 일로 바뀔 때까지 숨 돌릴 틈을 얻었다.    - p.40, 41

 

 

 

# 02. 「제 꿈 꾸세요」, 김멜라

길손이 된 나는 친구 규희가 아닌, 전 애인이었던 세모가 아닌, 엄마에게로 오늘밤 향하기로 한다. 슈퍼에서 커피우유를 본 순간, “꿈을 꾸는 엄마의 마음과 그 꿈으로 간 내 마음,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을 이어주는 챔바의 마음이 삼각뿔의 세 직선처럼 하나의 꼭짓점에서 만나고 있”(p.90)음을 깨달았으므로. 비록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빨대의 뾰족한 부분으로 커피우유가 담긴 폴리에틸렌 필름의 빗면을 조준하는 일을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상관없으리라. 시도한 자체만으로도 그들의 관계성은 달라졌으니.

나는 나와 이어진 사람의 꿈으로 가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 내 상상력의 힘으로, 내가 기억하는 기쁨을 위해. (…) 그런 꿈을 나 혼자 만들 수 있을까.    - p.93

 

 

 

# 03. 「버섯 농장」, 성혜령

음습하고 쾌쾌한 버섯 공장의 진득한 공기가 순식간에 서늘해짐을 느낀다. 자식의 잘못을 더는 책임질 수 없다는 남자의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억울하게 생긴 빚을 이해할 수 없는 진화는 그를 응징의 대상으로 삼고, 기진은 자신에게 섭섭함을 드러내는 진화를 돕는다. 그렇다면 둘은 완벽한 친구이고 공모자인 동지가 된 것일까. “너 어딘가 잘못된 거 아냐?”(p.138) 했던 진화의 말을 재차 곱씹게 된다.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존재해야만 비로소 성립하는 섬뜩한 세계를 기진과 진화를 통해, 그들이 잠시 머물렀던 버섯 농장에서의 일을 통해 아주 단적으로 마주한 기분이 든다.

그때 기진에게 진화는 모든 것을 나누어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런 게 있을 리 없다는 걸 일찍 알았어야 했다.    - p.137

 

 

 

# 04. 「젊은 근희의 행진」, 이서수

근희의 진득하지 못한 성미를 못마땅해 하는 문희와 그런 언니를 꼰대라며 문희의 모순을 지적하는 동생. 그러나 둘은 서로가 타인에게 욕먹고 미움받는 것을 참지 못하는 가족이기에 서로를 향한 관심과 걱정 역시 충만하다. 단지 서로를 향한 애정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뿐. 말하자면 그들은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잘 몰랐기에 갈등한 것이지 않았을까. 결국 근희의 진심에 가닿아 응원하는 문희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어떤 기시감을 느꼈다.

 

나의 동생 많관부.    - p.187

 

 

 

# 05. 「요카타」, 정선임

“나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다”(p.229)는 마지막 문장 앞에서 잠시 주춤했다. 주민등록상 나이 백 살, 실제 나이 아흔여섯에도 인간이란 존재는 삶이 지속되는 한 망망대해를 유영하는 존재겠구나 싶은 막막함에 휩싸인 터였다. 그러나 모르겠는 순간에도 요카타를 읊조렸을 서연화를 그려 보자니 마음이 조금 놓이는 기분은 어째서였을까. 사실 그녀의 삶은 언니가 이생에 두고 간 껍데기 속에서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그녀는 구태여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고 싶었던 순간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서슬 퍼런 시대를 지나 온 그녀는 그렇게 묵묵히 그저 자신 앞에 놓인 삶을 걸어왔던 것이리라. 스스로에게 요카타, 요카타 주문을 걸면서. “기억 속에서 침목 위를 위태롭게 걸어가던 여자아이”(p.226)를 오늘은 내가 위로해 주고 싶다. 요카타, 라고.

요카타, 라고 말하면 마음이 놓였다. 요카타는 다행이라는 말보다 더 다행 같았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어도 요카타라고 말하면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요카타, 라는 말로 체념하고 요카타, 라는 말로 달래왔는 지도 모른다.    - p.222, 223

 

 

 

# 06. 「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엄마는 말했다. “나는 선택했어. 그래서 너희를 만난 거야.”(p.272) 문을 열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개장을 가졌으면서도 엄마는 돌아와 제 자리를 지켰고 나를 만났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런 엄마의 엄마도, 엄마의 엄마의 엄마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고 또 그런 삶을 살 수 있었으면서도 결국 회귀를 택한 그녀들. 그러면서도 제 딸에게만은 “돌아오는 길을 생각하면 자개장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오히려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아야만 자개장을 잘 쓸 수 있다”(p.271)는 비밀을 터놓고 마는 모성이 눈물겹다. 나는 그녀들의 삶 앞에서 미처 깨닫지 못한 자개장의 또 다른 용도를 발견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 역시 선택할 것이다. 그 선택이 무엇이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며.

무언가 떠나지 않도록 보존하는 것. 자개장에는 그런 용도가 있다.    - p.275

 

 

 

# 07. 「연필 샌드위치」, 현호정

연필 샌드위치를 입에 넣는 이가 있다. 물론 “있는 힘껏 삼키고 구토감을 참느라”(p.306) 고생하지만, 결국 구토하고 만다. 꿈의 일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걸까. 할머니가 자주 조리던 간장 넣은 꽈리고추와 멸치의 냄새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먹는 일의 혐오를 일찍이 알려 주고 말았던 걸까. “어쩌면 구수한 맛이란 먹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는 유일한 맛”(p.299)이란 결론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겪었을 섭식과 거식의 문제를 되짚어 볼 수밖에 없는데, 정말 영적 탯줄이란 게 있다면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나에게로 이어지며 흘러갔던 것은 비단 영양분만은 아니었으리란 생각을 하게 한다.

 

“뭐라도 먹어야지, 은정아.”    - p.309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8점
이미상 외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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