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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3

인연 | 피천득 | 샘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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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소년 같은 진솔한 마음과 꽃같이 순수한 감성과
성직자 같은 고결한 인품과 해탈자 같은 청결한 무욕(無慾)의 수필

 

 

 

내가 피천득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은전 한 닢」이라는 수필을 배우면서 였다. 이 수필집 후반부에도 그 글이 있어서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읽어볼 수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얼 하려오?"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 p.222

 

 

 

수업시간에도 그랬고, 참고서에도 그랬고, 문제집 속 해답지에도 이 글의 교훈은 '인간의 맹목적인 소유욕에 대한 연민'이였다. 당시의 나는 좀처럼 수긍할 수 없어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글이라도 사람 생각은 여럿인데, 꼭 그것만이 정답인걸까. 아님 피천득 선생님이 정해준 답이었을까?? 뭐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직접 속 시원히 묻고 싶단 짓궂은 상상을 할 때도 더러 있었던 것 같다.

 

꽤 오랜만에 다시 읽은 「은전 한 닢」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거지는 여섯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노력으로 은전 한 닢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삶을 지탱하게 했던 꿈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달리 쓸 곳도 없이 그저 그 돈 한 개가 갖고 싶었다는 거지의 면모가 적어도 나에게는 순수하게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더군다나 한창 배워나가는 학생들에게 맹목적 소유욕에 대한 연민을 정답으로 고르고 교훈 삼으라는 건 너무 매정한 일 아닌지, 여하튼 그건 좀 슬픈 일이다.

 

언젠가 박완서 작가님의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자신의 글이 시험문제로 등장해서 아이들을 곤란하게 하는 상황을 두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언급하신 부분을 읽은 기억이 난다. 정작 작가 본인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문학이란 걸 개인의 생각을 지우고 정답을 찾아야만 하는 도구로 여기게 되는 상황이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문학만큼은 수단과 도구가 아닌 순수성을 보장받고 그것을 지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걸 두고 지나친 이상주의적 발상이라고 치부하는 세상이 아니길 바라면서.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첫 페이지를 펼치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 p.17

 

 

 

수필의 정의가 마음에 와닿았다. 그리고 마지막 글 「만년(晩年)」에서는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하늘에서 별을 쳐다볼 때 내세가 있었으면 해 보기도 한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 본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 p.271

 

 

 

그는 진정 사랑을 하고 갔다. 그리고 스스로를 염치없는 사람이라고 일컬을 만큼 염치 있는 겸손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책을 덮으면서, 나도 훗날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다고 기억되면 좋을까, 잠시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려면 좀 더 멋진 삶을 살지 않으면!

 

 

 

 

 

인연 - 10점
피천득 지음/샘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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