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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4

깊이에의 강요 | 파트리크 쥐스킨트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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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왜 나는 깊이가 없을까?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소설가를 처음 알게 됐던 건, 『향수』를 통해서였다. 도입부부터 정신없이 빠져들게 했던, 그래서 이 책, 그러니까 『깊이에의 강요』 마지막에 있는 짧은 에세이, 「문학적 건망증」에서 말하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향수』만큼은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단편 소설 3편과 에세이 1편으로 이루어진 얇은 책이기에 가볍게 생각하고 선 채로 표제작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쩜! 대학생활 내내 내 마음을 어지럽히던 그 이야기가 여기에 활자로 적혀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쓰인 글이 마치 방금 내 손을 거쳐 마지막 문장의 잉크 자국이 마르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꽤나 서늘한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예술가, 그러니까 창작을 하는 사람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기도 한데, 뭐랄까… 사실은 창작에 모범답안이라는 것은 없지 않은가. 물론 예술에 있어서의 흐름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시대를 막론한 절대적인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또한 그런 암묵적 틀에 갇히는 순간, 예술가는 더 이상 제대로 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심히 의문이 들기도 하고.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 p.11

 

 

 

『깊이에의 강요』로 돌아와 생각해 봤을 때,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점은 젊은 예술가의 유약함이었다. 한 평론가가 던진 말 한마디로 그녀는 더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쓸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게 부족했던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왜 나는 깊이가 없을까? (…) 그래 맞아, 나는 깊이가 없어!    - p.12, 13

 

 

 

결국 젊은 예술가는 깊이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을 뿐 아니라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당혹스러운 건 그녀의 죽음 이후, 앞서 그녀의 작품에 깊이가 없음을 지적했던 평론가의 단평에 있다.

 

 

…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 p.17

 

 

 

그 계통의 소위 박학다식한 사람의 냉철한 시각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그 비평을 여과 없이 절대적으로 그리고 쉽게 믿어버리는 다수의 무지를 생각해봤을 때, 평론가의 비평은 좀 더 신중해야 옳았다. 그리고 그 발언은 의도 여부를 떠나 상대에게 꽤나 심각한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음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물론 예술가 스스로도 작품에 대한 그들의 평가를 나름의 확고한 신념 하에서 선별하여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 다음 작품을 도모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로 인해 발전적일 수 있다면.

 

그러나 안타깝게도 『깊이에의 강요』에서의 평론가는 그리 진중한 성정의 사람은 못되었던 것 같다. 동일한 예술가의 작품을 두고 백팔십도 다른 평가를 이다지도 쉽게 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여러모로 회의감을 일으키는, 하지만 누군가는 분명하게 꼬집을 만한 이야기였고, 그걸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간단 명료하게 잘 표현한 글이지 싶다. 깊이에의 강요가!

 

이 외 단편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과 에세이 「문학적 건망증」도 짧지만 힘 있는 글들이었다.

 

 

 

 

 

깊이에의 강요 - 10점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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