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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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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기분 | 김봉곤 | 창비 한국문학이 기다려온 새로운 사랑의 기분 우리는 저마다 열차에 올라있다. 같은 목적지를 약속한 두 사람이었지만 어느 지점에 이르러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별하기도 하고, 애초부터 혼자였던 이는 뜻밖의 누군가와 마음이 통해 남은 여정을 동행하기도 하면서. 그렇기에 열차 안 좌석의 주인은 영원하지 않다. 내 자리였지만 누군가에게 내어줄 수도, 누군가의 자리를 중도에 내가 차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수한 반복이 빚어내는 크고 작은 혼재 안에서 열차만은 계속해서 나아간다. 끝없이 끝없이……. 그 지난한 여정 안에서 우리는 대개 사랑을 한다. 그러므로 훗날 그 시절의 기분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한때 사랑했던 대상을 상기하는 일과도 적이 다르지 않으리라. 그러는 사이 우리는 아주 조금씩 현재의 자신에 닮아..
룬샷 | 사피 바칼 | 흐름출판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 모두가 무시하던 ‘허무맹랑한 아이디어’를 성공으로 이끄는 룬샷의 구체적 사례를 다루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수많은 기업의 성공과 실패, 그 이면을 들여다 봄으로써 훗날의 우리가 유념해야 할 지점에 대하여 사고하도록 한다. 그 핵심을 저자는 물이 고체가 되기도, 액체가 되기도 하는 ‘0도에서 균형 잡기’에서 찾는다. 즉, ‘상전이’ 현상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룬샷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프랜차이즈를 이어갈 수 있는 ‘상태 분리하기’와 그 두 그룹 간 원활한 소통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동적평형 만들기’가 그것이다. 이를 통해 혼돈과 침체, 함정에 빠지지 않고 나아가는 한편, 쉬이 깨지기 쉬운 룬샷을 보호하고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에 대..
친구에게 | 이해인(글)·이규태(그림) | 샘터사 떨어져 있어도 가까운 마음으로 그리움 담아 전하는 글 이해인 수녀가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해 온 우정에 대한 글을 모으고 여기에 새로이 쓴 글을 더해 한데 엮은 책, 『친구에게』. 코로나19로 인한 생활 속 거리 두기가 한창인 요즘이어서 한결 애틋하게 다가오는 글들이다. 더욱이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친구와의 추억을 상기하게 하는 서정적 그림이 보태져 한층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데운다. 때때로 사람들은 무언가를 잃고 서야 소중함을 깨닫고는 하는데, 이 힘든 시기가 꼭 그 연속인 것만 같다. 하지만 어쩌면 그동안 어떠한 의심도 없이 누려온 일상의 모든 것들이 전복돼 버린 지금이야말로 소중히 대해야 했음에도 소홀히 했던 것들을 그러모아 다시금 품을 수 있는 좋은 기회 인지도 모르겠다. 그 중의 하나가 아끼는 ..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무라카미 하루키 | 비채 낯가림 심한 작가가 털어놓은 아기자기하고 비밀스런 일상 예쁘고 못나고 길고 짧고를 넘는 무라카미 하루키식 해피 라이프! 치밀한 구성과 전개, 특유의 분위기로 자신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구축하고 있어 흔히 ‘하루키 월드’라 표현되곤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단연 독보적이다. 그런데 소설 못지않게 매력적인 것이 바로 그의 에세이가 아닌가 싶다. 거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비슷한 듯 다른, 익숙한 듯 낯섦에서 발견하는 의외성, 그 색다름이 호기심을 자극해 두 장르 간 동반 상승효과를 자아내는 것도 같다. 그것은 마치 소설을 쓰는 하루키는 매끈하게 면도한 후 곧게 잘 다려진 양복을 차려입은 채로 바르게 서 있는 말쑥한 모습이라면, 에세이에서 만나는 그는 한층 편안한 일상복 차림으로 역시나 내키는 대로..
야생의 위로 | 에마 미첼 | 심심 25년간 우울과 싸워온 박물학자가 수집한 꽃과 식물, 자연물에 관한 열두 달의 기록 지난 25년간 우울증으로 고통받은 저자 에마 미첼은 자연을 통해 위로받았다고 말한다. 『야생의 위로』는 그 일 연간의 치유의 기록이다. “우울한 날에도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위로가 된다.”(p.20)는 믿음으로, 반려견 애니와 함께 집 밖으로 기꺼이 나서곤 했던 나날이었다. 그 안에서 그녀는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만끽하며, 우울한 마음을 떨치곤 했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와 일기 쓰듯, 그날에 만난 동식물을 글과 그림으로 남기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극도의 우울 상태에 놓인 날에는 극단적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 | 무레 요코 | 양파 무레 요코의 삶과 함께 해온 동물 이야기! 우연하게 인연이 닿아 끼니를 챙겨주기 시작한 길고양이 시마짱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시마짱을 두고, ‘몸은 땅딸막하고 짙은 갈색과 검은색의 줄무늬에, 얼굴이 호빵만한 데 비해서 눈은 단춧구멍만하다. 물론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랑이에는 방울이 달려 있다. 모습을 드러낼 때도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안녕들 하쇼?’라는 분위기를 풍긴다.’(p.9)고 묘사한다. 그 모습을 가만히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자면, 역시나 무심한 아저씨 고양이가 그려진다. 길고양이가 밥을 얻어먹으려면 애교로 무장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토록 시크한 고양이라니. 더욱이 먹는 양도 저자와 함께 생활 중인 집고양이의 몇 배나 된다고 하니, 염치마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저자..
코스모스 | 칼 세이건 | 사이언스북스 칼 세이건이 펼쳐 보이는 대우주의 신비 『코스모스』는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p.50)라는 원초적 물음에서 출발하는 인간의 오랜 탐험의 역사이자 그 기록이다. 일찍이 인류는 하늘 위 반짝이는 별을 올려다보며, 지금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이 세상 너머의 무한한 세계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다. 그 끝없는 관심과 탐구를 통해 베일에 둘러싸여 있던 우주는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 왔는데, 물론 그 중심에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몇몇 위대한 - 이를테면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뉴턴 등의 선구자적 - 인물들의 뜨거운 열정과 끈질긴 노력이 자리하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나날이 놀라운 속도로 혁신적 성과를 보이고 있는 과학의 발전은 우주에 대한 신비를 풀어가는 데 한..
사랑 밖의 모든 말들 | 김금희 | 문학동네 몰랐던 마음, 잊었던 기억 사랑과 사랑 밖을 아우르는 우리의 거의 모든 말들 김금희 작가의 소설 속에서 만나 온 인물들은 대개 무심한 듯 다정했다. 어떤 처지나 상황에도 소란하지 않은 채 묵묵했고, 담담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서 있는 공간은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바로 이곳과도 같아서, 그들이 하는 말과 생각, 행동을 가만히 좇으면서 나는 안도했고, 때때로 슬퍼하기도 분노하기도 했다. 동시에 저마다 자신을 지키고 사랑하는 이들을 보듬으며 살고자 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풍경을 바라보며, 아름답다 여겼다. 데뷔 십일 년 만에 처음으로 펴 낸 작가의 산문집이 한층 고대됐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은 작가가 유년에서 현재에 이르기 까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나날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