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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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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식탁 | 박현수 | 이숲 식민지시대 식탁의 배경과 역사 소설을 통해 본 여러 가지 음식의 풍경들 음식을 통해 삶과 시대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여간 흥미롭지 않다. 그것은 음식 자체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지만, 경험하지 못한 시대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어쩌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그 시절 사람들이 즐기던 음식과 그 음식을 내어주던 사람들, 그리고 이들을 아우르던 공간들을 활자로 나마 생생하게 엿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무엇보다 “먹는다는 행위의 온전한 의미를 물으려 했다”(p.5)는 저자의 의도에 시선이 모아졌는데, 식민지라는 엄혹한 시대에도 사람들의 먹고사는 일은 계속 됐고 그 불가피한 지배국 하에서 새로이 유입돼 정착된 식문화는 오늘날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관심이 더 갔..
눈 | 막상스 페르민 | 난다 한 권의 소설이면서 한 편의 시가 되는 이야기 아직 누구도 밟은 일 없는 소복하게 눈 쌓인 너른 들판을 상상한다. 온통 눈부신 흰빛에 사로잡힌 와중에도 그곳을 지나야 한다면, “태어나, 연기하다, 죽는 사람들”(p.122)의 내딛는 걸음걸음은 한없이 조심스러워질 테다. 어쩌면 자신이 남길 발자국을 기대하며 성큼성큼 나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를 쓰는 남자, 유코는 눈 속에 숨어 있을 줄을 찾아 그 위를 아주 신중하고도 대담한 걸음으로 내딛으리라. “삶의 줄 위에서 균형을 잡”(p.122)아야 하는 곡예사의 운명을 타고난 연유다. 그는 삶의 곡예사이자 언어의 곡예사가 되기 위한 걸음을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선생 소세키는 시인에 대하여, 예술에 대하여 그렇게 좇아야 한다고 일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 샘터사 당신이 지금 힘겹게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바로 내일을 살아갈 기적이 된다!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p.239) 맺었던 장영희 교수의 마지막 문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새봄을 기다린다’는 말을 여러 번 읊조리기도 하면서. 그것은 한 사람의 독자로서 품게 된 안타까움과 고마움의 교차된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녀의 일을 진즉 알고 있는 데다가, 힘든 와중에도 희망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글을 남기고 갔기에 말이다. 그 안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문장,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인간의 패기도, 열정도, 용기도 아니고 인간의 ‘선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p.220, 221) 적고 있었던 걸 다시금 떠올려 본다. 그녀는 앞장서 그런..
오리엔탈 특급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 황금가지 전 세계 미스터리의 역사를 재창조한 추리 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를 대표하는 작품만을 모은 에디터스 초이스 폭설 속에 고립된 기차 안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탐정 푸아로는 시체에서 발견된 상처와 승객들의 심문으로 범인을 밝히고자 몰두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또 다른 대표작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마찬가지로 - 각기 기차와 별장이라는 - 밀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다. 다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경우 연쇄 살인 속에 서로가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통해 충격과 공포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를 크게 부각한 반면, 『오리엔탈 특급 살인』은 공동의 적을 향한 연대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바라는 바를 이뤄내기 위해 서로가 서로의 알리바이를 증명함으로써 완벽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