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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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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스트리트 | V.S. 나이폴 | 민음사 좌절과 광기로 얼룩진 식민지 사회 미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비극적 초상을 한 소년의 눈을 통해 희극적 터치로 그려 낸 연작 소설 트리니다드 섬의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의 빈민굴 미겔 스트리트. 여기 살고 있는 소년 ‘나’는 자신의 눈에 비친 거리의 사람들을 열여섯 편의 단편을 통해 그리고 있다. 그들 대다수는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거나 아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거하게 술을 마시고 도박을 즐기며 아내와 자식을 구타하기도 한다. 또한 불륜을 저지르고 도둑질을 일삼으며 경찰에 연행되는 일도 빈번하다. 소년은 “그러나 거기서 살고 있던 우리는 그 거리를 하나의 세계로 여기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각기 특유의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p.101)고 회고..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 민음사 고루하고 위선적인 권위에 희생된 순수한 소년의 비극 개인의 창의성과 자유로운 의지를 짓밟는 제도와 교육에 대한 비판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총명했고, 그런 까닭에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재능 있는 아이라면 의례히 나아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을 향해 내디뎠다. 그것은 곧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는 일이었는데, 입학의 기쁨과 밝은 장래에 대한 설렘도 잠시, 신학교 생활은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온 지난날의 삶을 전복시킨다. 결국 신경쇠약 증세로 학교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더는 주위에서 격려하던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냉엄한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그 파국의 여정을 좇으며 수레바퀴 아래서 있던 젊은 영혼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물론 어느 누구도 한스가 잘못되기를 ..
개인적 체험 | 오에 겐자부로 | 을유문화사 출구 없는 현실에 놓인 현대인에게 재생의 희망은 있는지 물음을 던지는 수작(秀作) 정녕 희망은 있는 걸까. 버드는 절망의 순간 희망을 물었다. “그런, 뇌 헤르니아의 갓난아기가 정상적으로 자랄 희망이 있는 건가요?”(p.38) 실은 스스로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하여 섣불리 장담해 줄 수 없으리란 것을. 그럼에도 그 순간 그는 희망을 물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나는 그 지점에서 이 개인적 체험이 한 존재에게만 한정된 고통이 아닌 삶 속에서 저마다 어떤 식으로든 마주하기 마련인, 그리하여 — 확실한 절망 아닌 — 불확실한 희망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공동의 체험으로 확장됨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비로소 그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아기를 살리고자 하는 대..
빈 옷장 | 아니 에르노 | 1984Books 살아낸 글, 살아서 건너오는 글, 그것이 바로 아니 에르노의 문학이 가진 힘 “나는 죽고 싶지 않다.”(p. 229) 했던 목소리를 되뇌며 한참을 사로잡혀 있었다. 토해내듯 숨 가쁘게 이어지는 문장 안에 드리운 드니즈 르쉬르 혹은 아니 에르노의 삶을 향한 결기를 마주했다는 안도감과 이 악물고 버텨온 지난날의 상처가 그럼에도 결코 말끔하게 아물지 못하리라는 슬픔이 일시에 밀려온 까닭이었으리라.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오직 그것만을 위한 글쓰기였기에 삶과 문학, 그 사이 경계마저 무용한 경이로운 진정성을 보여 준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빅토르 위고나 페기처럼 교과 과정에 있는 작가를 공부해 볼까. 구역질이 난다. 그 안에는 나를 위한 것, 내 상황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
클라라와 태양 | 가즈오 이시구로 | 민음사 인간 소녀 조시와 그녀의 동반자가 된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 두 존재가 그려내는 가슴 저미는 슬픔과 사랑, 그리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의 이야기 인공지능 로봇에게 마음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가당치 않은 소리라고 여기면서도 클라라에게만은 예외를 두고 싶어 졌던 건, 어째서일까. 제 아무리 인간에 대한 관찰과 이해가 뛰어난 에이에프라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더욱이 일체의 감정이 배제된 로봇 제품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 에이에프 클라라가 자신을 택한 아이를 위해 애쓴 모든 것들을 ‘마음’을 빼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기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클라라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뒤에 우연히 재회하게 된 매니저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시를 위해서 제가 할 ..
페스트 | 알베르 카뮈 | 민음사 위험이 도사리는 폐쇄된 도시에서 극한의 절망과 마주하는 인간 군상 죽음이라는 엄혹한 인간 조건 앞에서도 억누를 수 없는 희망의 의지 194X년 알제리 해안에 면한 평범한 도시 오랑에서 창궐한 페스트를 중심축으로 한 연대기다. 붉은 피를 토하며 비틀대다가 죽어 가는 쥐 떼들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정부 당국은 페스트를 선포한다. 연이어 도시 봉쇄를 명하는데, 전염병으로 인한 공포는 물론 뜻하지 않게 헤어진 연인, 가족들로 인해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 대혼란의 한복판에서 의사이자 서술자인 리유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은 저마다의 신념과 방식으로 재앙에 맞서고자 한다. 페스트라는 짙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 도시, 이 안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마주하는 인간 군상이 낯설지 않다. 작년 말, 중국 우한에..
이방인 | 알베르 카뮈 | 민음사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 뫼르소가 아랍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던 그 순간을 되뇌어 본다. 레몽에게 휘둘렀던 칼을 재차 꺼내 든 아랍인의 잘못이었을까, 그때에 칼날 위로 강하게 내리쬐던 태양의 잘못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 비록 어떠한 의도도 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 상대가 꺼낸 칼날 위 반사된 빛을 어쩌지 못하고 권총을 꺼낸 뫼르소의 잘못이었을까. 이 일련의 상황은 재판장에서 피고인 측 증인대에 올랐던 셀레스트가 반복하여 말했듯, ‘하나의 불행’이라고 밖엔 설명할 길 없는 아주 지독한 불행의 한 순간이었음에 분명하다. 이후 뫼르소는 모든 자유를 박탈한 채, 사형에 처해질 날만을 기다리는 처지로 전락한다. 그렇게 이 세계에서 영원한 이방인이 돼 버린 뫼르소. 무엇..
아침 그리고 저녁 | 욘 포세 | 문학동네 침묵과 리듬의 글쓰기 명료한 언어로 포착해낸 전 생애의 디테일 두 장으로 나뉜 이 소설의 첫 장은 노르웨이의 작은 해안가 마을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요한네스의 출생의 순간을 묘사한다. 혹여 출산하는 동안 어떤 문제라도 생기지는 않을까, 안절부절못하면서도 곧 태어날 자식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한 남자(올라이)의 독백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까 한 생명이 맞이하고 있는 생의 아침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두 번째 장에서는 장성한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노년의 요한네스를 그린다. 아내와 절친했던 친구를 앞서 보내고, 이제는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생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저물어 가는 생의 저녁에 자연스레 비유될 수 있겠다. 한편 이 이야기는 마침표 없이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