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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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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 욘 포세 | 문학동네 침묵과 리듬의 글쓰기 명료한 언어로 포착해낸 전 생애의 디테일 두 장으로 나뉜 이 소설의 첫 장은 노르웨이의 작은 해안가 마을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요한네스의 출생의 순간을 묘사한다. 혹여 출산하는 동안 어떤 문제라도 생기지는 않을까, 안절부절못하면서도 곧 태어날 자식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한 남자(올라이)의 독백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까 한 생명이 맞이하고 있는 생의 아침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두 번째 장에서는 장성한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노년의 요한네스를 그린다. 아내와 절친했던 친구를 앞서 보내고, 이제는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생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저물어 가는 생의 저녁에 자연스레 비유될 수 있겠다. 한편 이 이야기는 마침표 없이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문장..
착한 여자의 사랑 | 앨리스 먼로 | 문학동네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 앨리스 먼로가 보여주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탐색과 통찰! 얼마간은 비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무엇도 쉬이 단정 짓지 않는다. 비슷한 선상에서 절대적이라는 말 역시 신뢰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모호한 것 투성인 삶이 가지는 속성과 불완전한 인간 존재의 본성에서 기인한다고 여기면서. 앨리스 먼로가 1998년 발표한 이 단편집에 엮인 여덟 편은 그것에 대한 이야기랄 수 있겠다. 절대적으로 선한 이도, 악한 이도 존재하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로 채워진 세계 안에서 그들은 단지 어떤 상황 하에 놓여있을 뿐이다. 때론 순조롭기도 어떤 때에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그 흐름에 적당히 몸을 맡긴 채로 살아간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시작으로 『미움, 우정, 구애..
디어 라이프 | 앨리스 먼로 | 문학동네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단편 작가, 우리 시대의 체호프 앨리스 먼로의 최신작이자 마지막 걸작! 작년 이맘때쯤 앨리스 먼로의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을 읽고 감탄했던 그 여운을 되도록 오래 담아두고 싶었다. 더욱이 절필을 선언한 그녀이기에 한정된 단편들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마지막 단편집인 『디어 라이프』를 곁에 두고도 한참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빙빙 두르고 둘러 오늘이 왔다. 그녀의 짧지만 긴, 은은하지만 강렬한 이야기를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었으므로. 그렇게 하루 한 편씩, 이 주간에 걸쳐 읽었다. 역시나 두 말할 필요 없이 예찬할 수밖에 없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이 이루는 앨리스 먼로의 세계는 자칫 무미해 보이지만, 그 어느..
남아 있는 나날 | 가즈오 이시구로 | 민음사 젊은 날의 사랑은 지나갔지만 남아 있는 날들에도 희망은 있다 한평생을 달링턴 홀의 집사로서 지내온 스티븐스는 위대한 주인이라고 믿었던 달링턴 경이 죽고, 지금은 새로운 주인인 미국인 갑부 패러데이 어르신 밑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던 1956년 7월의 어느 날, 그는 주인 어르신의 제안에 따라 서부 지방으로 생애 첫 여행을 떠난다. 그 6일 간, 영국의 아름다운 풍경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며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한다. 오직 위대한 집사가 되고자 했던 일념은 아버지의 임종을 외면하게 했고 마음에 두었던 켄턴 양에 대한 사적인 감정을 지우게 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자신의 삶에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순간들이었음을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때 그 순간 내가 이런 선택 혹은 ..
깨끗하고 밝은 곳 | 어니스트 헤밍웨이 | 민음사 "필요한 것은 밝은 불빛과 어떤 종류의 꺠끗함과 질서야." #. A Clean, Well-Lighted Place 귀머거리 노인은 밤늦도록 카페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로 인해 퇴근이 늦어지는 것을 불평하던 젊은 웨이터는 한 잔 더 달라는 노인의 요청을 거절하고 그를 내보낸다. 함께 있던 나이 많은 웨이터는 동료의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도 카페에 늦게까지 남아있길 좋아하는 노인의 마음에 공감한다. 마감 후 집으로 향하는 길, 나이 많은 웨이터는 불빛이 꽤 밝은 어느 바로 향한다. 그러나 제대로 닦이지 않은 스탠드를 보는 순간, 한 잔 더 권하는 바텐더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다. "나는 늦게까지 카페에 남고 싶어." 나이 많은 웨이터가 말했다. "잠들고 싶어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파트릭 모디아노 | 문학동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기억의 어두운 거리를 헤매는 한 남자의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여정 어쩌면 삶이란, 그런 것만 같다. …지워져 가는 것이고, 그로 인한 신비가 우리의 삶을 한결 아름답게 만든다고. 한 어린 소녀가 황혼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돌아온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그 소녀는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저녁 속으로 빨리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 p.262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 나선 한 기억상실자의 이야기다. 기억을 찾기 위한 몇 가지 단서에 의존한 채 시작된 추적은 차츰 진전을 보이는 듯싶지만, 불확실성의 미궁에 빠..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 앨리스 먼로 | 뿔(웅진) 감미롭고도 강렬한 문장으로 그려낸 이 시대 모든 사랑의 풍경 평범한 사람들의 만남과 이별, 기쁨과 절망을 노래하는 다섯 빛깔 이야기 삶을 향한 깊이있는 이해가 돋보인다. 일상 안에서 한번쯤 겪기 마련인 어떤 생각, 어떤 감정의 찰나를 하나의 예시처럼 적절한 상황 속의 등장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는 식으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 화자들은 하나같이 우리 주변 어디에서 마주하더라도 낯설지 않은 이들이고, 그들의 삶 역시 일상의 범주 안에서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조금더 깊이 들어가보면, 때론 뜻밖의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당황하기도 하며, 시시때때로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두고 안도와 후회를 거듭하기도 하는…, 나름의 복잡다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문학동네 전쟁에 직접 참천하고 살아남은 여성 200여 명의 목소리 침묵을 강요당했던 그녀들의 눈물과 절규로 완성된 전쟁문학의 기념비적인 걸작 내 안에서 전쟁이란 남성들의 세계였다. 그러므로 전쟁 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것이 여성일지언정, 전쟁의 한복판에 여성이 온몸을 던져 적과 싸웠으리라는 생각은 애당초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이를 테면, 박수근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을 바라보면서 6.25 전쟁과 해방 후 가족을 일으켰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라는 이름의 여성들이었음을 자각하긴 했어도, 그 전쟁 자체는 아내와 어머니를 대신해 나갔던 남자들의 세계라고 여겼던 것이다. 수많은 남정네들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일이 부지기수였기에, 전쟁에 나간 남편 대신 어린 자식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