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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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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 민음사 고루하고 위선적인 권위에 희생된 순수한 소년의 비극 개인의 창의성과 자유로운 의지를 짓밟는 제도와 교육에 대한 비판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총명했고, 그런 까닭에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재능 있는 아이라면 의례히 나아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을 향해 내디뎠다. 그것은 곧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는 일이었는데, 입학의 기쁨과 밝은 장래에 대한 설렘도 잠시, 신학교 생활은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온 지난날의 삶을 전복시킨다. 결국 신경쇠약 증세로 학교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더는 주위에서 격려하던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냉엄한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그 파국의 여정을 좇으며 수레바퀴 아래서 있던 젊은 영혼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물론 어느 누구도 한스가 잘못되기를 ..
아우라 | 카를로스 푸엔테스 | 민음사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한 여인의 집요한 욕망 독특한 화법과 어둡고 기괴한 묘사가 돋보이는 신비로운 고딕소설 펠리페 몬테로는 젊은 사학자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구시가지의 한 낡고 어두운 저택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백발의 늙은 콘수엘로 부인은 오래전 죽은 남편 요렌테 장군의 비망록 출판을 위한 원고 정리를 요청하는데, 그때 부인의 조카 아우라가 등장하고 그녀의 두 눈동자에 매료돼 이끌리듯 일을 수락한다. 그러나 이후 눈으로 확인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어지며 그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 기묘한 일들은 현실과 환상을 절묘하게 넘나드는 상황 속에서 한층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는 그들 각자가 자신의 욕망에 취해 보았던 환영과도 연결되는 까닭이다. 펠리페는 여인의 아..
연인 | 마르그리트 뒤라스 | 민음사 베트남에서의 가난한 어린 시절과 중국인 남자와의 광기 서린 사랑 그 아련한 이미지들을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로 되살려 낸 자전적 소설 무더위만큼이나 뜨거운 욕망에 사로잡혔던 프랑스인 소녀와 중국인 남자의 사랑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관능적 문장 안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일찍이 소녀는 남성용 모자를 쓴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확인하며 퍽 마음에 들어 하는 한편 어딘가 달라진 스스로의 일면을 알아챈다. 그러고는 이내 예감한다. “밖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내맡기고, 모든 시선에 자신을 드러내고, 도시와 도시를, 길과 길을 싸돌아다니며 자신을 굴리는, 욕망에 자신을 맡기는 여자”(p.20)가 되리라는 것을. 이후 소녀는 메콩 강을 건너 기숙학교로 돌아가기 위한 나룻배에서 리무진을 탄 중국인 남자를 만난다. 하..
체호프 단편선 | 안톤 체호프 | 민음사 단순한 유머를 넘어 우수 어린 서정적 미학을 창출해 낸 작품 선집 모순과 부조리에서 나온 삶의 비극성을 감싸 안는 따뜻한 리얼리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체호프 단편선』에 실린 열 편의 짧은 소설은 겉으로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한 지점에 맞닿아 있다. 이를테면 삶이 유발하는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극과 극을 보여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인간 존재가 — ‘떠난다’는 행위를 통하여 — 껴안고 있는 삶과 그것의 본질에 대하여 깊이 사유하는 것이다. 실로 우리는 어디론가 향하거나 자신이 죽음으로써 혹은 타인의 죽음을 목도함으로써 삶의 한 부분을 일단락 짓고, 나아가 그 전체에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생각했다. - p.31,..
모래의 여자 | 아베 코보 | 민음사 초현실주의적 수법으로 일상의 의미와 자유에 대해 심도 깊게 파고든 수작 사흘간의 휴가 동안 모래땅에 사는 곤충 채집에 나선 남자(니키 준페이). 그가 S역에서 내려 다다른 곳은 해안가 모래 언덕에 자리한 마을로, 어느 노인에 이끌려 한 여인의 집에서 신세 지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의 계략에 빠지고 만다. 그리하여 남자는 모래 구덩이 속에 집을 짓고 살면서 계속해서 날라와 쌓이는 모래를 끝없이 퍼 나르며 살아가고 있는 이 기묘한 마을이 자신을 더욱 교묘하게 속박하고 억압하고 있음에 분노하며 오직 탈출만을 꿈꾸는 나날을 보낸다.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유동하는 모래의 이미지’(p.19)를 따라 자신 역시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한동안을 보내리라는 기대는 그렇게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케이크와 맥주 | 서머싯 몸 | 민음사 실존 인물, 문단의 내막 적나라하게 묘사해 세간에 파장을 일으킨 풍자 소설 성공과 창작의 곡예에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케이크와 맥주에 부합하는 삶을 살았던 로지. 세간 사람들은 그녀의 부도덕함을 수군댔지만, 정작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저 자신이 관심 있고 흥미 있는 것을 향해 나아갔을 뿐.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철없는 여인이라고 해두기에도 마땅치 않다. 그녀가 내뱉은 말에 담긴 가치관이 확고한 까닭이다. 그녀는 자신이 추구하는 방식대로 삶을 충실하게 이끌어 간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다른 남자에게 고가의 선물을 받아온 로지에게 어셴든은 분개하며 따지려 들지만, 그녀는 ‘우아하고 상냥하게’ 대응한다. “아이 참, 왜 다른 사람들 일로 속을 ..
만년 | 다자이 오사무 | 민음사 흔들리는 존재를 끌어안는 영원한 청춘 문학 다자이 오사무 문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만년』은 그가 이십 대에 발표한 열다섯 편의 초기작을 엮은 창작집이다. 그런 까닭에 젊은 감각 특유의 솔직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면서도 거침없는 면모들이 그의 필체와 다방면적인 시도들을 통해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 안에서도 단편 「추억」과 「어릿광대의 꽃」은 자신의 내면을 깊이 응시함으로써 이끌어낼 수 있었던 자기 고백이기도 해서 사소설로도 널리 알려진 『인간실격』과 맥을 함께하며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다. 더욱이 개인의 욕망과 집착, 실패와 좌절, 그로 인한 고뇌의 순환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내적 모순의 양상은 불확실성이 가득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한 불안의 서사와 맞닿아 한층 흥미롭게 다가온다. 만..
이선 프롬 | 이디스 워튼 | 민음사 애정 없는 결혼 속에서 ‘낡은 폐선’처럼 살아가는 이선 프롬 도덕과 윤리의 이름으로 억압해 버린, 우리 내면의 슬픈 자화상 소설 속 ‘나’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통해 그 자신이 여러 사람들에게서 전해 듣고, 직접 눈앞에서 마주하기도 한 이선 프롬과 두 여인(지나, 매티)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나’에게서 한 발짝 물러난 더 큰 액자 밖에서 이선 프롬이라는 인물의 감정선에 자연스레 몰입하게 된다. 이는 곧 마음속에 드리운 그림자를 가만히 응시하는 일이기도 할진대, 이를테면 삶 속에서 – 그것이 무엇이 됐든 간에 – 억압되기 마련인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과도 같으리라.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의심할 여지없는 타당한 일이지만, 그것을 위해 개인의 자유가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