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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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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 민음사 ‘참을 수 없는’ 생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오가는 우리들의 자화상 물에 젖은 종이가 켜켜이 쌓여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 때로는 햇살에 마르기도 하지만 쪼그라들어 그 흔적을 기어코 남기고 마는… 삶이란 그런 거라고 여겨왔다. 인간의 내재된 욕망과 아픔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갈수록 삶의 무게는 더해질 것이고, 너절하게 해어져 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라고 의심치 않으면서. 종국에 토마시와 테레자가 트럭에 깔려 죽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결국 인간이란 애초부터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이들의 종말 역시 삶의 무게에 굴복당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는지.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프랑수아즈 사강 | 민음사 프랑수아즈 사강이 그려 낸 사랑, 그 난해하고 모호한 감정 오랜 연인 사이인 폴과 로제 사이에 젊은 청년 시몽이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룬 소설이다. 사실 삼각관계라는 설정이 자칫 진부하고 통속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그러함을 감안하더라도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는 읽어볼 만한 하다. 각기 인물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포착함으로써 그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하는 까닭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로제는 연인인 폴을 속이고 다른 여자와 릴에서 주말을 보내고 돌아온다. 그러나 폴이 친구 부부네 집에서 브리지 게임 따위를 하며 주말을 보냈을 거라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시몽과 브람스 연주회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당신 그 풋..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 민음사 너무나 순수했기에 파멸할 수밖에 없었던 한 젊은이의 초상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서른아홉의 나이로 일찍 생을 마감했다. 그런 까닭에 『인간 실격』을 읽자면, 자연스럽게 그의 삶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도 자기 고백의 사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온통 자기혐오와 자기 비하로 가득한 이 소설에서 인간이 가진 삶을 향한 열정과 활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자기애 과잉이 초래한 자기 연민에까지 이르는 한 인간의 어둡고 애처로운 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로 시작하는 『인간 실격』 수기의 주인공 '요조'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며, 스스로에게 인간 실격을 선고한다. 이같은 자기 파괴적 행위를 어떻게 이해..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 민음사 순수한 서정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묘사한 일본 문학 최고의 경지 책을 펼쳐 들자, 나도 모르는 사이 눈앞에 새하얀 눈밭이 그려졌다. 그만큼 첫 문장이 주는 흡입력이 사뭇 대단하다. 이 같은 강렬한 끌림이 나뿐은 아니었는지, 작품 해설 첫머리에서도 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특히나 '일본어가 지닌 독특한 운율이 제대로 살아 있다'고 언급한 부분에서 『설국』의 서정적 문장들을 원서로 음미하고 싶단 생각을 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인터넷으로 찾아 첫 부분 몇 단락만 읽어봤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夜の底が白くなった。 信号所に汽車が止まっ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 p. 7 역시나 유려한 문장이 주는 황홀..
호밀밭의 파수꾼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 민음사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p. 248 [빌 헬름 스테켈 (정신분석 학자)] 『호밀밭의 파수꾼』은 주인공 콜필드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2박 3일간의 여정을 담은 소설이다. 조금 더 보태자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 안에서 갈등과 고민을 거듭하며 서서히 성숙해 가는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전개 과정을 거치는데, 중요한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진부하지 않다는 데 있다. 오히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고 또 겪었을 십 대 시절의 방황과 일탈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자신의 현재 모습 혹은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한다. 떠올려보면 도서관에서 이 책을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