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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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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프롬 | 이디스 워튼 | 민음사 애정 없는 결혼 속에서 ‘낡은 폐선’처럼 살아가는 이선 프롬 도덕과 윤리의 이름으로 억압해 버린, 우리 내면의 슬픈 자화상 소설 속 ‘나’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통해 그 자신이 여러 사람들에게서 전해 듣고, 직접 눈앞에서 마주하기도 한 이선 프롬과 두 여인(지나, 매티)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나’에게서 한 발짝 물러난 더 큰 액자 밖에서 이선 프롬이라는 인물의 감정선에 자연스레 몰입하게 된다. 이는 곧 마음속에 드리운 그림자를 가만히 응시하는 일이기도 할진대, 이를테면 삶 속에서 – 그것이 무엇이 됐든 간에 – 억압되기 마련인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과도 같으리라.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의심할 여지없는 타당한 일이지만, 그것을 위해 개인의 자유가 희..
여름 | 이디스 워튼 | 민음사 미국 문단에서 여성의 성적 열정을 다룬 최초의 본격 문학 열여덟 살의 소녀 채리티가 어엿한 여성으로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디스 워튼의 소설, 『여름』.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싱그러운 여름날 채리티 앞에 나타난 건축가 하니와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숭고한 계절의 흐름은 때가 되면 여름을 보내줘야 하는 것처럼, 그녀 역시 마찬가지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결단한다. 자신을 산에서 데려온 후견인 로열과 미래를 함께하기로. 앞서 말했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만남과 사랑, 헤어짐의 과정 안에서 드러나는 채리티의 심리적 성장에 있다. “모든 게 지긋지긋해!”(p.8)라며 불만하는 것으로 등장하던 소녀가 다른 여인과 약혼한 연인에게 오랜 고심 끝에 보낸 몇 줄 편지에는 그로..
1984 | 조지 오웰 | 민음사 21세기, 고도의 정보화 사회에 던지는 조지 오웰의 경고 거대한 지배 체제하에 놓인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고 어떻게 파멸해 가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디스토피아 소설 거대한 암흑세계에 발 디딘 기분이 참담하다.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하며 검열과 세뇌를 일삼는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잠시나마 상상해 본 것이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p.114)를 갈망하던 윈스턴 스미스는 결국, ‘행복한 몽상에 잠겨’(p.416) ‘그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총알이 그의 머리에 박’(p.417)히는 순간에 다다른다. 그것은 곧 영혼의 말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체제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저항하며 자유를 희망했지만, 함정에 빠져 거대한 지배 세력에 끝내 굴복하고 말았으므로. 그렇기에 ..
사양 | 다자이 오사무 | 민음사 일본의 패전과 몰락 계급의 비극을 여성의 목소리로 그린 페미니즘적 작품 패전 후 일본 사회는 급변했고, 그 가운데 귀족의 몰락은 두드러졌다. 귀족 집안의 일원인 가즈코와 나오지 역시 그 혼란의 소용돌이를 피해 가지 못한다. 여기서 눈 여겨 볼 점은 그들의 행보에 있다. 그 말인 즉, 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남매이면서도 처해진 현실에 대응해 나가는 방식만은 사뭇 다른 까닭이다. 때때로 우리는 삶 속에서 느끼는 슬픔과 고통, 그로 인한 고뇌를 딛고 서서 반드시 결단해야만 하는 어떤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이곤 한다.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필연적으로 발현되는 환경 또는 심경의 변화나 내외적 성장 혹은 파멸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그 전형이 그들의 삶을 향한 각기 다른 선택을 통해 한층 선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페스트 | 알베르 카뮈 | 민음사 위험이 도사리는 폐쇄된 도시에서 극한의 절망과 마주하는 인간 군상 죽음이라는 엄혹한 인간 조건 앞에서도 억누를 수 없는 희망의 의지 194X년 알제리 해안에 면한 평범한 도시 오랑에서 창궐한 페스트를 중심축으로 한 연대기다. 붉은 피를 토하며 비틀대다가 죽어 가는 쥐 떼들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정부 당국은 페스트를 선포한다. 연이어 도시 봉쇄를 명하는데, 전염병으로 인한 공포는 물론 뜻하지 않게 헤어진 연인, 가족들로 인해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 대혼란의 한복판에서 의사이자 서술자인 리유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은 저마다의 신념과 방식으로 재앙에 맞서고자 한다. 페스트라는 짙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 도시, 이 안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마주하는 인간 군상이 낯설지 않다. 작년 말, 중국 우한에..
이방인 | 알베르 카뮈 | 민음사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 뫼르소가 아랍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던 그 순간을 되뇌어 본다. 레몽에게 휘둘렀던 칼을 재차 꺼내 든 아랍인의 잘못이었을까, 그때에 칼날 위로 강하게 내리쬐던 태양의 잘못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 비록 어떠한 의도도 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 상대가 꺼낸 칼날 위 반사된 빛을 어쩌지 못하고 권총을 꺼낸 뫼르소의 잘못이었을까. 이 일련의 상황은 재판장에서 피고인 측 증인대에 올랐던 셀레스트가 반복하여 말했듯, ‘하나의 불행’이라고 밖엔 설명할 길 없는 아주 지독한 불행의 한 순간이었음에 분명하다. 이후 뫼르소는 모든 자유를 박탈한 채, 사형에 처해질 날만을 기다리는 처지로 전락한다. 그렇게 이 세계에서 영원한 이방인이 돼 버린 뫼르소. 무엇..
무진기행 | 김승옥 | 민음사 근대인의 일상과 탈일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해 내면서 1960년대 문학에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대표 단편 10편 서울의 제약회사에서 전무 승진을 앞두고 있는 '나(윤희중)'는 아내의 권유에 쉼 차, 고향 무진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우연하게 음악 선생이라는 한 여자(하인숙)를 만나게 되고,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여자를 무진에 그대로 남겨놓은 채, 서울로 돌아간다. 현실에 타협한 선택은 부끄러움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두고두고 스스로를 채근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그 괴롭힘은 합리화 영역 밖의 굴복의 기억인 셈이다. 그러나 이상만을 쫓기에는 우리의 삶을 제약하는 것이 너무도 많다. 이상을 추구하는 삶을 바라마지 않으면서도 현실의 나는 곧잘 주저앉곤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
구운몽 | 김만중 | 민음사 몽자류(夢字類) 소설의 효시이자 시대마다 재생산되는 환상 문학의 원형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소설 중 하나인『구운몽』. 1687년(숙종 13년) 서포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집필했다고 전해지는 이 소설은, 부귀영화의 한낱 부질없음을 말한다. 그러니까 성진과 팔선녀가 꾸었던 꿈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는…… 뭐, 다들 이 정도는 알고 있을 것 같다. 나 역시도 학창 시절 교과서에 일부 실린 것을 배웠던 기억이 여태껏 남아있으니. 그때 일부 읽었던 것 이후로, 비로소 전문을 읽게 된 『구운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여전한 느낌이었다. 무료했던 수업 시간에 읽힘 당했던(?)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읽는 것이므로 조금은 색다르기를, 그러니까 좀더 흥미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