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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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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외출 | 마스다 미리 | 이봄 소중한 사람의 죽음으로 알게 된 슬픔 그 슬픔 끝에서 고개를 내미는 일상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보내드리는 일은 마치 세탁하는 것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기왕이면 세탁기 말고 정성스레 손빨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세제를 적당히 푼 미지근한 물에 빨랫감을 잠시 담가 두었다가 얼룩지고 때 묻은 부분을 손수 맞잡고 비빈다. 몇 차례에 걸쳐 거품을 빼고 비로소 깨끗해진 세탁물은 옷감이 변형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힘 조절을 해가며 물기를 빼, 서너 번 공중에서 털어 빨랫줄 위에 넌다. 하루 이틀 꼬박 잘 말린 옷은 반듯하게 다림질해 옷걸이에 걸어두고, 또 어떤 옷은 잘 개서 서랍장에도 넣는다. 이렇게 품을 들이는 과정을 통해야만 끝이 나는 손세탁처럼,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 ..
사는 게 뭐라고 & 죽는 게 뭐라고 | 사노 요코 | 마음산책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죽음 철학 삶을 대하는 사노 요코(佐野洋子)의 의식과 행동에는 조금의 거침도 없다. 그저 살아가야 할 일상을 살아낼 뿐. 시시각각 맞닥뜨리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한편 감수해야 할 것은 기꺼이, 털어낼 것은 미련 없이 내어 놓는 식이다. 사소한 질척거림 조차 찾아볼 수 없는 삶의 태도는 자신이 중병에 걸린 것을 알은 뒤에도 변함이 없다. 외려 직시하게 된 죽음 앞에서 한층 발랄해 보이기까지 하다. 죽음을 삶에서 외따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써 바라보는 ― 정확히는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정리가 된 ― 까닭일 것이다. 그렇기에 삶에 관한 자질구레한 미련 따위, 죽음에 대한 걱정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저 숨 쉬고 있는 동안은 살아갈 따름이라는, 죽음 앞의 ..
今日も一日きみを見てた(오늘 하루도 너를 보고 있었다) | 角田光代 | 角川文庫 처음이어서 서툴고 모든 것이 신비로운 가쿠타 미쓰요 애묘 에세이! 「うちの猫が子ども産んだら、ほしい?("우리 고양이가 새끼 낳으면 키우고 싶어요?")」라는 느닷없는 제안에 순순히 좋다고 대답한다. 실은 고양이를 키워본 적도, 설사 반려동물을 들인다고 하더라도 절대적으로 고양이보다는 강아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말이다. 그렇게 엉겁결에 맞이하게 된 새끼 고양이가 이 에세이의 주인공 토토다. 처음 키워보는 탓에 하나에서 열까지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서로를 알아 가고자 하는 노력 속에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족으로 거듭난다. 평소라면 절대 무리라고 생각했던 일들…, 이를 테면 끝까지 남곤 했던 술자리에서의 지난날의 자신이 무색하게 혼자 있는 토토를 걱정하며 귀가를 서두른다든지, 오랜 고심 끝에 거금을 ..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 구스미 마사유키 | 인디고 『고독한 미식가』 원작자의 식욕 자극 에세이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가 이야기하는 미식 에세이,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고기구이를 시작으로 라면, 돈가스, 도시락, 샌드위치 등 스물여섯 가지의 음식을 다룬다. 여기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어쩌다 먹는 귀한 음식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쉬이 먹곤 하는 것들에 가까워 한결 친숙하게 다가온다. 물론 일본인 저자의 특성상, 우리에겐 다소 익숙지 않은 나폴리탄, 낫토, 튀김덮밥, 오차즈케 등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워낙 일본으로의 여행이 빈번한 시대 이거니와, 기회가 닿는다면 그곳에서 저자처럼 이 음식들을 즐겨보겠다는 요량으로 읽어도 좋을 법해서 흥미롭다. 더욱이 생선회의 경우, 와사비를 푼 간장에 살짝 찍어 먹는 일본식과는 달리 초고추장을 듬뿍 찍..
어른 초등학생 | 마스다 미리 | 이봄 그림책을 펼치면 되살아나는 ‘어린아이’의 시간 그것은 어른이 돤 자신을 지키는 ‘토대’가 된다 그림책을 통해 유년을 향수하며 그 시절의 자신을 떠올린다. 신나고 즐거웠고 때로는 실수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던 지난날이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 어엿하게 성장했음에 감사한다.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서 그림책이 소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고, 어른이 된 지금에까지 그녀의 마음속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을 수 있는 이유리라. 그러고는 이따금씩 꺼내어 읽으면서, 자신 안에 있는 유년의 어린 자신과 마주한다. 그것은 그림책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소중히 아끼며, 언제까지나 간직하고픈 바람에서 비롯한다. 누구나 그런 대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매개로 유년을 떠올리고 추억하게 하는 무언가. 여기저기 패이고 빛바랜 낡..
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 | 마스다 미리 | 이봄 한 번뿐인 인생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마흔 살이 됐을 때, 문득 ‘아름다운 것을 많이 봐 두고 싶다.’는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하는 그녀.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마흔 한 살부터 마흔 여덟 살까지 계속된다. 오로라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출발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를 시작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이라는 테마로 떠난 독일, 몽생미셸이 있는 프랑스와 리우 카니발 축제의 브라질, 핑시 풍등제가 열리는 타이완이 그 결심의 여행지들이다. 평소 동경하면서도 좀처럼 떠나기 힘들었던 곳들을 더 늦기 전에 떠나보자고 용기 내 감행에 나선 것이다. 단, 혼자 떠나는 여행인 데다가 언어와 체력 문제가 있기에 가이드가 동행하는 패키지 투어를 이용하기로 한다. 그렇게 약 십 년에 ..
ふつうな私のゆるゆる作家生活(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 益田ミリ | 文春文庫 마스다 미리가 말하는 작가로 산다는 것!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로 시작된 작가 마스다 미리와의 인연이 꽤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네모 반듯한 컷 속에 담긴 간결한 그림과 이야기가 소소한 웃음을 주고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리라. 어찌 보면,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별 것 아닐 수도 있고 그래서 무척이나 사소하고 심심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외려 그 점이, 그 현실감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 중심에 놓인 수짱 캐릭터를 아낀다. 이번에 만난 책은 저자가 도쿄로 상경해 작가가 되기까지의 에피소드를 담은 자전적 만화다. 여러 편집자들을 마주하면서 맞닥뜨렸던 이런저런 상황들을 되짚거나, 그때에 스쳤던 감정들을 솔직하게 풀어 놓는 식이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내키지 않음에도 이곳저곳 기웃대는 모습이..
그렇게 쓰여 있었다 | 마스다 미리 | 이봄 어른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안타까움, 서글픔, 아름다움을 엮은 매혹의 에세이 어른과 아이 틈에서 어른아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그들의 몸은 어린아이의 형상을 지웠지만, 가슴 한 켠에는 유년의 순수를 고이 담고 사는 이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이가 몇 이건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마음 안에 깃든 아이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으면 그만. 저자 마스다 미리는 마흔 중반의 어른으로서, 자신이 살아가는 일상에 대하여 말한다. 그 안에는 한 가정의 딸로서, 싱글 여성으로서, 친구들과 OO모임을 곧잘 결성하며 유쾌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포함한다. 그 일상을 슬며시 들여다 보면, 그녀의 마음 한가운데 자리한 어린 시절을 소중히 대하는 그녀가 존재한다. 때론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