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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9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김영민 |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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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인생과 허무와 아름다움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나는 누구인가’를  이따금 생각한다. 이 물음은 아주 잠깐 때로는 한동안의 나를 사로잡을 만큼 골몰하게도 하는데, 대개는 새삼스럽게 존재를 고민하는 철학 책에 기웃거리는 행위로 나타나곤 했다. 가장 극에 달했을 때는 켄 윌버의 『무경계』를 쥐고 혼자서 심각하게 씨름하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 그것 자체가 아예 소용없는 일이라고 까지는 여기진 않지만, ― 그 분투가 무색하게 내가 손에 넣은 것은 손아귀에 쥔 모래알과도 같았다. 쥔 만큼이라도 어떻게든 붙들고 싶었지만, 결국 손가락 사이로 속절없이 빠져나가고 마는. 그러니까 애초부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원초적 질문은 그렇게 얻을 답이 아니었다. 어쨌든 마음 깊숙이에서 나란 존재의 정체를 밝혀보려는 시도는 외려 더 높은 벽을 만난듯한 열패감을 한껏 맛보고 서야 그쳤던 것만은 확실하다. 역시 대부분의 날들이 그러했듯, ‘나는 나지, 달리 뭐겠어’라고 도리어 반문하는 것으로 아주 싱겁게 맺곤 했으니. 여기서 조금 우스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는 누구인가’ 란 물음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두더지 게임판의 두더지들처럼 시시때때로 그러면서도 아주 꿋꿋하게 그 질문은 나를 향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한 반복…….

 

여태껏 질문 자체에만 집착해서 였을까. 그것이 어느 순간에 고개를 들곤 했었나,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김영민 교수의 에세이 안에서 그 답을 우연찮게 발견하고 만 것이다. ‘정체성을 따지는 질문은 대개 위기 상황에서나 제기’(p.58) 된다는 것. 맞다. 여기 발 딛고 서있는 나란 사람, 그 존재 자체를 향한 의구심이 피어오를 때, 스스로를 향해 질문해 왔다. 그 찰나는 다름에 아닌 위기의식이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롭고도 반가운 사실은 따로 있다. 마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정체성 관련된 질문들이 난감한 순간의 해답으로 전환되어 눈부시고도 해맑은 수호천사가 되어 준다는 것이 요지다. 이를 두고, 저자는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p.61)라 말했다. 문득 누군가가 그와 같은 질문을 해주길. 그러면 나 역시 그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답으로 대신해 보련다. 과연 진정 자유와 조우할 수 있을는지, 시험해 보고 싶다.

 

저자의 참신하고도 깊은 사유에 반할만 하다. 여기에 시니컬한 비꼼의 해학은 덤이다.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에 국한된 얘기만은 아니다.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고, 상처 입고, 그러다가 결국 자기 주변 사람의 죽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유한함을 알게 되는 이러한 성장 과정은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확장된 시야는 삶이라는 이름의 전함을 관조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관조 속에서 상처 입은 삶조차 비로소 심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된다. 이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다. (…) 상처도 언젠가는 피 흘리기를 그치고 심미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성장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구원의 약속이다.   - p.37 「성장이란 무엇인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10점
김영민 지음/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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