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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9

잘 다녀와 | 톤 텔레헨 |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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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세상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 떠나보면 달라질까?"

 

 

 

사람들은 저 너머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곤 한다. 그러나 그런 호기심만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역시 갖고 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외에도 각자가 놓인 개별적 상황과 여건이라는 변수가 분명하게 존재하기는 할 테다. 그러나 결국은 이 두 가지의 시소게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호기심이 조금 더 우세하다면 떠날 것이고, 두려움이 조금 더 크다면 그 자리에 머물 것이라는.

 

톤 텔레헨의 소설 『잘 다녀와』는 숲속의 여러 동물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 망설임과 두려움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는 떠날 채비를 마치고서도 계속 망설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결심 끝에 떠난 곳에서 크고 작은 위기를 맞기도 하는 식이다. 그리고 비록 기대에 못 미치기는 했으나, 다녀왔다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제각기의 모습들은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서, 때로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기도 그들의 도전을 응원하게도 되는 것이리라.

 

나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쓸데없이 비등해서 순간순간 심한 곤란을 느끼곤 해왔다. 그래서 망설임 끝에 주저 앉기도 마음을 다잡고 떠나기도 한 것이 얼추 비슷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결국 한 가지, 단순히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그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딛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만은 제대로 배운 듯하다. 주저하던 것이 허무하리만큼 너무도 황홀했던 순간들도 있었고 반대로 원하는 것을 못 얻고 기대에 한참은 못 마쳤던 순간들도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그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던 이유다. 삶의 이러 저런 경계 사이에서 골몰하곤 하는 일상 속 우리의 모습을 십분 반영하고 있는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가 흥미롭다.

 

 

 

하루가 다 지나기 전에 다람쥐가 길을 나섰다. (…) 그는 항상 자기 발을 내디딜 곳으로 제일 먼저, 제일 좋은 길을 택했다. 그러나 옆길이 보이면 그 길을 택했고, 그날의 계획들을 잊어버리면, 그냥 잊어버렸다. (…) 그러다 구불구불한 모랫길을 만났다. 다람쥐는 그 길로 들어섰다. 표지판이 보였다. 경계선으로 가는 길. 그래 거길 가 보고 싶었어. 그러나 슬프게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샛길이 금방 다시 나타났다. 얼마나 가고 싶었던 경계선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샛길에는 죽 직진하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 길은 가시가 빽빽하게 돋아 있는 덤불밭으로 곧장 이어져 있어서 다람쥐는 무척 주저했지만, 금세 그 길로 걸어 들어갔다. 다람쥐는 피부가 벗겨지면서도 덤불에서 벗어나려고 허우적댔다. 그러다 도랑으로 굴러떨어져, 오래된 나뭇잎을 이불 삼아 잠이 들었다. (…) 다음 날 아침, 돌아가는 길도 샛길도 없이 곧바로 해변으로 이어진 길에 다다랐다. 거기엔 작은 배가 준비되어 있었다. 다람쥐는 그 배에 올라 수평선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이어서 파도를 타고 수평선을 지나고, 빙산의 문들을 통과해, 거울처럼 반짝이는 수면 위에서 점점 더 새로운 수평선을 향해 갔다. 때때로 엄청난 소용돌이를 맞아 수직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하얀 파도의 꼭짓점에서 꼭짓점으로 날기도 하면서. 태양이 점점 더 크게 보였다. 어쩌면 태양이 점점 커지는 게 아니라 그가 점점 더 태양에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던 중 다람쥐는 파도에 휩쓸려 해안가로 팽개쳐졌다. 곧 집에 돌아가면 몇 주 동안이나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무궁무진한 모험에서 살아남았던 것이다.    - p.93, 94, 96

 

 

 

 

 

잘 다녀와 - 8점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arte(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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