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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9

우먼 인 윈도 | A.J. 핀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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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내가 본 것은 정말로 살인사건이었을까?”

 

 

 

애나는 광장공포증으로 인해 향정신성 약물과 술에 의지한 채 집 안에서만 생활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러셀 가족의 집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목격하게 되면서 위태로웠던 그녀의 삶은 한층 위기에 빠진다. 자신은 분명하게 목격한 것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애초에 발생한 적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는 까닭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극도의 혼란과 불안에 빠진 한 인간의 모습은 저자의 치밀한 심리 묘사 안에서 보다 현실감 있게 구현되고 있다. 더욱이 모든 내막이 서서히 밝혀지기까지 스릴러라는 장르에서 흔히 기대하기 마련인 적당한 긴장감은 육백 페이지에 이르는 이 소설을 단숨에 읽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오랜만에 읽은 스릴러 소설 『우먼 인 윈도』. 읽는 순간만큼은 주인공 애나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도 애나와 그녀를 둘러싼 공간들을 비밀스럽게 훔쳐보는 떳떳지 못한 취미에 한동안 빠졌던 듯도 하다. 그녀가 주장하는 기억을 둘러싼 진실 여부를 탐하면서. 한편 각자가 취해야 했던 입장이 결국 모두의 파국으로 치닫고 만 현실의 비극이 안타깝기도 하고, 우연한 목격으로 그 소용돌이에 휩싸인 한 여인이 감당해야 했을 고통의 크기가 – 더욱이 그녀가 이미 끌어안고 있었던 삶의 무게를 생각해 볼 때, - 가히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가혹해 보이기도 했다. 막바지, 애나는 극도의 흥분 상태인 이선을 끌어안으며 “두 사람 모두 너를 사랑했어.”(p.595)라 말하며 어른다. 그녀의 그 한 마디는 얼어붙었던 이선의 마음 한 켠을 - 비록 아주 작은 부분이었을지언정 – 녹아내리게 했으리라.

참고로 2020년 5월 조 라이트 감독 연출에 에이미 애덤스, 줄리언 무어, 게리 올드먼 주연의 영화로도 만나 볼 수 있다고 한다.

 

 

 

……냐는 신음한다. 쓰러진다. 무너진다. 벽돌을 짚은 한 손과 허공을 가르는 다른 손.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타는 듯한 나뭇잎. 어둠.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비추는 한 줄기 빛, 그리고 좁아지는 시야. 녹아내린 흰빛이 눈을 가린다. 깊고 두터운 웅덩이가 만들어질 때까지 표백되는 시야. 나는 소리를 질러보려 노력한다. 입술에 모래가 느껴진다. 콘크리트의 맛이 느껴진다. 피 맛도 느껴진다. 바닥 위를 빙빙 돌고 있는 사지가 느껴진다. 땅이 파문을 일으키며 몸을 들어 올린다. 몸이 공기 중으로 파문을 일으키며 요동친다. 지금과 똑같은 일이 지금과 똑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적이 있다는 사실을 뇌 한구석 어딘가가 기억해낸다. 낮은 파동의 목소리들이 기억난다. 머릿속에서 이상한 단어들이 맑고 선명하게 튀어오른다. ‘넘어졌어요, 동네 사람들, 아무도, 미쳤어’와 같은 단어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없다.    - p.84

 

 

 

 

 

우먼 인 윈도 - 8점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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