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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3

각각의 계절 | 권여선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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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무엇을 기억하는가, 어떻게 기억하는가, 왜 기억하는가
우리가 왜 지금의 우리가 되었는지에 대한
권여선의 깊고 집요한 물음

 

 

 

우리가 말하는 기억은 무엇이고 무얼 위한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스스로를 살아가게 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써 우리 각자는 기억이란 것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는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하여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한 방향으로 우리의 기억은 나아가고, 때로는 굴절되고 왜곡되기도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함께 한 어느 순간의 일들이 저마다의 기억 속에서 달리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고 말이다. 동시에 우리는 기억을 반추하며 퍼즐을 맞춰 나가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인연을 이어가는 한편 인연의 끈을 놓기 위하여 기억의 파편을 저 멀리 흘러 보내기도 하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에도 이른다. 권여선 작가의 신작 소설집 『각각의 계절』 속 인물들을 바라보며 나는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단편 「하늘 높이 아름답게」에는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정기적으로 아들네와 가족 여행을 가고 성당 활동에도 나서며 “자신이 제법 철이 들고 너그러워졌다고 생각”(p.90)하는 베르타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성당에서 인연이 돼 자신의 집안일을 도와주기도 했던 마리아의 부음은 그녀를 혼란에 빠뜨린다. 언젠가 마리아를 따라 태극기를 팔러 갔던 때를 떠올리며, 그날 양산 살에 눈가를 찔렸던 순간 자신을 위로하던 마리아의 행동에 외려 불쾌함을 토로했던 자신을, 나아가 어찌하여 팔리지도 않는 태극기를 팔러 다닌 거냐며 윽박지르던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실은 마리아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이는 태극기를 떠올리”(p.111)며 자신이 입양 보낸 첫아이의 청회색 눈동자를 떠올렸다는 것을, “마리아의 구취가 진통제의 부작용으로 인한 오심과 구토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랬다면 뭔가 달라졌을까”(p.113) 자조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성당의 가을 바자회가 끝날 무렵, 삼삼오오 모여 떠나간 마리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는 “도대체 이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뭐가 만족스러운 걸까. 쉬지 않고 떠들어대면서 이들이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한탄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스스로를 향한 책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기 자신을 기만한 스스로의 모습 안에서 깊은 참담함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p.114) 하던 베르타의 읊조림이 가슴 한가운데 와 박혔던 것도 그렇고……

이외 「사슴벌레식 문답」, 「실버들 천만사」, 「무구」, 「깜빡이」,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기억의 왈츠」에는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림으로써 오늘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살아온 날들을 되짚고 살아갈 나날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모습이 투영돼 있어 오래 곱씹게 한다.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 p.114 「하늘 높이 아름답게」

 

 

 

 

 

각각의 계절 - 10점
권여선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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