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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3

에드워드 호퍼 | 롤프 귄터 레너 | 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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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에드워드 호퍼(1882-1967)
삶과 작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한창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가 전시 중이다. 2층과 3층의 전시실을 거쳐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전면에 걸린 「햇빛 속의 여인(A Woman in the Sun,1961)」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유일한 유화 작품인데, 한 여인이 침대 옆에 나신의 상태로 서 있고 왼쪽 창 밖으로 초록의 두 언덕이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 커튼 자락이 보이는 — 정면 창을 통해 햇빛이 쏟아진다. 그로 인해 불을 밝히지 않은 방 안의 그녀는 마치 무대 위에 유일하게 조명을 받고 있는 연기자처럼 관람객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번 전시의 오디오 가이드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강렬하고 밝은 햇빛은 마치 자연의 영역이 방 안으로까지 넘어와 인간의 문명을 침범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동시에 실내와 실외 공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합니다.”

 

 

A Woman in the Sun
Edward Hopper (1882 - 1967), 1961
Oil on linen, 40 1/8 × 60 3/16in. (101.9 × 152.9 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이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점이 된다. “첫 번째는 이미 호퍼의 초기 작품들에서 그가 전 생애에 걸쳐 일관되게 추구하는 자연과 문화 사이의 구조적 극화 현상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초기 작품들에 이미 빛과 빛의 효과로 인해 의미가 부여되는 회화기법상의 특징을 보이는데, 이는 후기 작품들에까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다.”(p.11, 14) 호퍼는 이처럼 자연으로 대표되는 산, 나무, 언덕, 들판 등과 문명으로 대표되는 집, 등대, 기차, 철길, 다리 등을 화폭에 담음으로써 이 두 영역의 미묘한 대립과 침범을 보여주면서도 구성과 색채, 특히 빛과 그림자가 주는 효과에 대한 끊임없는 시도를 보이는 방향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끌어 갔다. 더욱이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모호성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자신의 감정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게 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졌다. 이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혹은 인물들 간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두드러지는데, 「밤샘하는 사람들(Nighthawks,1942)」이 그 대표적이다. 이번 전시에는 이 작품에 착수하기 전 습작으로 그린 드로잉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에 불을 밝힌 실내 바에는 함께 나란히 앉아 있는 남녀가 있고, 그 앞에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허리를 약간 수그리고 있다. 그리고 왼편으로는 양복에 모자를 쓴 한 남자가 등을 보이고 홀로 앉아 있다. 그들은 각기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지만, 이 풍경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시선은 이들이 자리한 구도 안에서 미묘하지만 분명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바깥의 어둠과 대비되어 유리창 너머로 훤히 들여다 보이는 내부의 불빛, 화폭 안에서 찾을 수 없는 문의 부재 등은 호퍼의 작품을 설명하는 단어로 자주 등장하는 단절과 소외, 고독 등을 연상케 함으로써 적막한 분위기를 한층 배가시키기도 한다.

 

 

Nighthawks  
Edward Hopper (1882 - 1967), 1942  
Oil on canvas, 84.1 × 152.4 cm (33 1/8 × 60 in.)  
United States (Artist's nationality)  

 

[이미지 출처 - https://www.artic.edu/artworks/111628/nighthawks]



호퍼는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추구하는 목표는 언제나 자연을 매개로 삼는 일이며, 어떤 오브제와 대면했을 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 나의 내면에서 이는 반응을 화폭 위에 포착하는 일이다. 그 순간은 세계가 나의 관심이나 상상적 재현과도 부합하는 때이다. (…) 내가 좋아하는 오브제야말로 나의 내적 경험을 총체적으로 의식화하는 데 가장 적합한 매개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p.10)고 말한 적 있다. 좋아하는 오브제들을 통해 자신이 바라본 것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스스로의 내면 — 이를테면 경험과 기억, 상상 − 을 더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던 것이다. 이번 전시는 그런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의도와 그 세계, 나아가 삶 전반에 대해 이해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돼 준다.


 

 

호퍼의 작품이 펼쳐 보이는 변화와 상상의 힘은 회화적 개념에 국한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접하면서 끊임없이 고립과 소외의 팬태즘을 갖게 되는 것은 자연의 장면과 인간의 장면에서만이 아니다. 이 팬태즘은 관객이 그림 자체와 만들어내는 거리감에서도 연원하는데, 결국에는 과연 이는 누구의 팬태즘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 p.91 「현실의 변모 : 호퍼, 현대적 화가」

 

 

 

 

 

에드워드 호퍼 - 10점
롤프 귄터 레너 지음, 정재곤 옮김/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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