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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5

무의미의 축제 | 밀란 쿤데라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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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농담과 거짓말, 의미와 무의미, 일상과 축제의 경계에서
삶과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는 더욱 원숙해진 시선 

 

 

 

인류는 광활한 우주 속 지구 안에서 무수한 죽음과 탄생을 목격하며 살아왔고, 시시때때로 스스로가 보잘것없는 혹은 잊힐지도 모르는 존재라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오곤 했다. 그렇기에 한 인간이 '삶'이라는 여정 안에서 어떤 의미 혹은 가치를 찾고자 부단히 애를 쓰는 것, 이를 테면 작은 것에도 기왕이면 좀 더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하고, 또 실제로도 그럴만한 가치 있는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드넓은 우주 안에서 먼지보다 작은 자신을 인식하고 고민하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 자체가 정녕 의미 있는 것일까,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됐든 삶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지속되어 나아간다. 그렇다면 밀란 쿤데라가 『무의미의 축제』에서 인간 존재와 그들 삶이 가진 의미와 관련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시간은 흘러가. 시간 덕분에 우선 우리는 살아 있지. 비난받고, 심판받고 한다는 말이야. 그다음 우리는 죽고, 우리를 알았던 이들과 더불어 몇해 더 머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 죽은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이 돼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완전히 무(無)로 사라져 버리는 거야. 아주 아주 드물게 몇 사람만이 이름을 남겨 기억되지만 진정한 증인도 없고 실제 기억도 없어서 인형이 되어 버려…… (…)"    -p.33, 34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물론 인간에게 주어진 살아있음의 시간을 하찮고 의미없다고 표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본질 자체가 무(無)에 가까움을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고 본다. 그러므로 일상에서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또 강요 받고 있는 세태를 경계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사랑, 그 '무'의미함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음을 역설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흔히들 '삶'을 두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것이라고 표현하지만, 실상은 살아내야 하고 심지어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갑절로 느껴지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 서서 바라보면 이런 조각들이 모여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또한 성숙하게 해서, 결국 살아있음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아닐는지 생각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기에 보잘것없는 존재 혹은 잊힐 존재라는 두려움에 삶을 너절하고 비루한 것으로 여기기보다는, 누구나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며 삶을 살아갈 자격이 충분한 존재로서, 충만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몰두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즉, 살아감에 있어서 지금의 자신을 용기 있게 직시하고 지혜롭게 헤쳐나감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의 용기 그리고 사랑을 통해 우리 앞에 '무'의미하게 존재하는 아름다움,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무의미의 축제를 온몸으로 즐기는 것이 인간으로서 우리의 또 다른 사명은 아닐는지.

 

 

"(…)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약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바로 당신 입으로, 완벽한, 그리고 전혀 쓸모없는 공연…… 이유도 모른 채 까르르 웃는 아이들……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들이마셔 봐요, 다르델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를 들이마셔 봐요, 그것은 지혜의 열쇠이고, 좋은 기분의 열쇠이며……."    - p.147

 

 

 

인간 삶과 그 본질이라는 주제 자체의 난해함과 이야기가 뒤섞이는 옴니버스식 구성 탓에 정독을 했음에도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작가가 내고 싶었던 목소리에 근접해 나가는 과정 자체에 책을 읽는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혼재된 대화 안에서 밀란 쿤데라의 삶에 대한 통찰력과 혜안을 엿보는 일은 이 수고스러운 책 읽기가 조금도 아깝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무의미의 축제 - 10점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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