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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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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 | 창비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 안내자 양정무의 미술관에는 없는 미술 이야기 인간사에 얽힌 미술 이야기를 4개의 주제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첫 장에서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는 고전미술의 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미에 대한 고정관념을 일깨운다. 두 번째 장은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흐름에 따라 변화해온 미술작품 속 표정에 주목하고, 세 번째 장에서는 왕과 귀족들의 전유물이던 예술작품이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되며 박물관과 미술관이 열린 공간으로 변모해 온 역사를 다룬다. 마지막 장에서는 미술과 팬데믹이라는 주제로 과거 흑사병과 스페인독감이 창궐했던 시기에 많은 이들이 죽음의 공포 안에서 사투하며 일궈 온 예술작품을 살핀다. 특히나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오늘의 우리 모습과도..
하얼빈 | 김훈 | 문학동네 세상에 맨몸으로 맞선 청년들의 망설임과 고뇌, 그리고 투신 짧기에 더욱 강렬했던 그들의 마지막 여정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이토의 몸에 확실히 박히는 실탄의 추진력을 느꼈다.”(p.166) 마음 깊숙이 품고 있던 ‘동양 평화’의 대의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소설 『하얼빈』은 그 역사적 순간을 향한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짧고도 긴 여정을 담고 있다. 이는 작가의 간결하고도 절제된 문장을 통해서 한층 빛을 발하고 있는데,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투신했던 안중근의 결연한 태도가 대표적이다. 더욱이 대한국인 안중근과 천주교에 입교한 신앙인 안중근이라는 상충된 가치로 말미암은 고민과 망설임,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 | 황금가지 전 세계 미스터리의 역사를 재창조한 추리 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를 대표하는 작품만을 모은 에디터스 초이스 열 명의 사람들이 오웬 부부 소유의 병정 섬에 초대된다.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각기 다른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저마다 누군가의 죽음에 연루됐음에도 법으로는 심판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저택에 들어선 사람들은 곧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되고, 액자 속 병정에 관한 오래된 자장가 가사에 맞춰 한 명씩 죽임 당하게 된다. 식탁에 놓여 있던 열 꼬마 병정 인형의 수 역시 차례로 하나씩 사라져 간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1939년작 임에도 근래 발표된 여느 추리소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건재함이 단연 돋보인다. 추리소..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 | 후루타 야스시 | 서해문집 누구나 꿈꾸는 세상 산호초 위에 앨버트로스의 똥이 쌓여 생겨난 작은 섬이 있다. 사람들은 매장된 인광석으로 부자가 됐고, 198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세금도 없었으며 모든 것이 공짜였다. 그러나 인광석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태평양에 있는 나우루 공화국에 대한 이야기다. 앨버트로스의 똥은 그곳 사람들에게 부를 안겨다 줬지만, 결과적으로 독이 되었다. 그동안 자신들이 일궈온 것들에서 손 놓게 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잃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인광석이 거의 다 사라질 즈음에서야 위기감을 느끼고 상황을 타개해 나가고자 했지만, 자신들 앞에 닥친 문제들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풍요로웠던 삶이 가져온 후폭풍이었..
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 문학동네 나와 함께해온 소중한 이들과의 시간이 단단하다고 믿고 싶은 마음, 그 희망을 쥐어보려는 청춘들의 사랑과 눈물 불확실한 세계에 우리 각자가 기댈 곳이라고는 서로를 향한 믿음뿐이지 않을까. 그러나 실상 그 믿음이란 것의 실체가 생각만큼 단단하지 못함을 모르지 않는다. 『믿음에 대하여』는 코로나 이후 삶을 지내며 한층 공고하게 다져진 한없이 연약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도무지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이란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연작소설이었다. 「요즘 애들」 사회 초년생의 고군분투는 눈물겹다. 수습 딱지 뗄 날을 고대하며 성실하게 할당된 업무를 수행하고자 함에도 사수의 기대치를 충족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것이다. 매거진 C에서 입사 동기로 만난 김남준과 황은채가 사수 배서정에게서 받은 부당한 대우는 그들이 요즘..
내가 빛나는 순간 | 파울로 코엘료 | 자음과모음 영원한 여행자이며 히피, 파울로 코엘료 에세이 삶이 지우는 온갖 어려움 안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며 나아갈 수 있는 힘은 결국 제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때때로 자신을 홀대하고 몰아붙임으로써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입히곤 하는 사람들… 실은 더욱 아끼고 다독이며 감싸 안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신을 향한 사랑에 서투른 까닭이리라. 저자 파울로 코엘료는 그런 이들에게 짤막한 글로써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긍정의 메시지를 띄운다. 그리하여 저마다의 ‘내가 빛나는 순간’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는 “인생이란,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이어지는 긴 순롓길”(p.69)에 비유한 바 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길이 낯설어 불안하고 초조하더라도 눈앞에 펼쳐진 때때로의 암흑에 ..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 헤르만 헤세 | 뜨인돌 헤르만 헤세가 21세기 탐서가들에게 전하는 문학과 책에 대한 경이로운 찬가 헤르만 헤세는 말한다. “인간이 자연에게서 거저 얻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이라는 세계”(p.16)라고. 책을 향한 존경과 경외의 마음을 담은 진심임이 전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 만큼 책을 아끼고 사랑해 마지않았던 헤르만 헤세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책에 관한 탁월하고도 폭넓은 식견을 글로 남김으로써 오늘의 우리를 위대한 책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덕분에 오늘에 이르기까지 임해 왔던 책 읽는 태도에 대한 적잖은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선사한다. 더불어 작은 욕심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것은 앞으로 채워나갈 책꽂이에 모인 장서들에 대한 것으로, 과연 “이 장서 주인의 가슴속에는 ..
모래의 여자 | 아베 코보 | 민음사 초현실주의적 수법으로 일상의 의미와 자유에 대해 심도 깊게 파고든 수작 사흘간의 휴가 동안 모래땅에 사는 곤충 채집에 나선 남자(니키 준페이). 그가 S역에서 내려 다다른 곳은 해안가 모래 언덕에 자리한 마을로, 어느 노인에 이끌려 한 여인의 집에서 신세 지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의 계략에 빠지고 만다. 그리하여 남자는 모래 구덩이 속에 집을 짓고 살면서 계속해서 날라와 쌓이는 모래를 끝없이 퍼 나르며 살아가고 있는 이 기묘한 마을이 자신을 더욱 교묘하게 속박하고 억압하고 있음에 분노하며 오직 탈출만을 꿈꾸는 나날을 보낸다.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유동하는 모래의 이미지’(p.19)를 따라 자신 역시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한동안을 보내리라는 기대는 그렇게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