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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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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한 장처럼 | 이해인 | 샘터사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을 위한 이해인 수녀의 시 편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이해인 수녀의 시 편지가 가슴 한 구석의 시린 마음을 달래준다. 특히나 이번에 발간된 『꽃잎 한 장처럼』은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당연하게 누리던 일상의 많은 것들을 잃게 된 우리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목소리여서 한층 귀하게 다가온다. 생각해보면 코로나19로 인해 알게 모르게 마음속 그늘이 깊게 드리워지고 있다고 실감하는 일이 왕왕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긍정적인 생각으로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활기차게 지내고자 마음먹으면서도, 뒤돌아서면 작은 일에도 쉬이 불평하고 불안해했던 것이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견뎌낼 수 있는 인내의 자세가 필요한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수녀님의 시와 글이 ..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 문학동네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칼 같은 글쓰기로 치명적인 열정을 진단한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 외국인이고 연하이면서 유부남인 사람과 사랑에 빠졌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불같은 사랑 앞에서 상대방 외에는 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었던 격정적 감정은 지난한 이별과 그것을 망라한 세월 앞에서 차츰 희석되어 감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열정의 한가운데를 지나버린 그녀에게 예전의 그 사람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소재의 특성상 다분히 자기 고백적이고 성찰적이기 마련인데, 특이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객관화된 시선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 놀라운 담담함은 외려 강렬함으로 치환되어 자못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세세하고도 명쾌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이 모든 감정의 변화를 그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 곰출판 사랑과 혼돈, 과학적 집착에 관한 룰루 밀러의 경이롭고도 충격적인 데뷔작! 혼돈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해 나가고자 분주하다. 그리하여 착안된 방법 중의 하나가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리라.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물고기들에 이름 붙이기를 행했던 생물학자였다. 저자로 하여금 그의 행적은 혼돈 속 암울한 시간에 갇힌 자신의 삶에 안내자가 돼 줄지도 모른다는 “도전적인 소망”(p.18)을 갖게 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차근하게 추적해 나간다. 지치지 않는 열정,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불굴의 의지는 가히 찬탄할 만했다. 그러나 어느..
우아한 우주 |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 프시케의숲 경이로운 우주에 관한 서정적이고 찬란한 51가지 사색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의 가능한 모든 것들에 대하여 말한다. 그야말로 ‘우아한 우주’의 이야기랄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순한 과학적 지식, 그 적확한 사실에 대한 기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한 놀라우리만큼 서정적이고도 낭만적인 접근 방식에 있다. 더불어 독특하면서도 개성적인 일러스트가 더해져, 우주를 향한 경이로운 탐구의 여정을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모든 생명체들과 그들의 터전인 자연, 나아가 우주가 품고 있는 이 모든 사색이 정말이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의 『우아한 우주』가 그것을 깨닫게 한다. 태양계 천체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움직이는지 잘 (혹은 대충이라도) 알기 전까지는 그들의 ..
장미의 이름은 장미 | 은희경 | 문학동네 나를 잊기 위해 떠나온 곳에서 뜻밖에 나 자신이 선명해지는 감각 인생의 가장 예외적인 시간이 나에게 남긴 모든 것 일상 아닌 곳으로 발걸음 하는 일이 내게는 정기적인 의례와도 같았다. 실상 그것은 외로운 일이었고 손톱만큼의 서러운 일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일말의 전환과 이를 위한 정신적 쉼을 갈구하던 나에게 그것은 감수할만한 값어치로 여겨졌다. 나 이외의 다른 이유를 갖다 붙이지 않고 내키는 대로 어디로든 내딛을 수 있다는 것은 곧, 이 삶이 오직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의 의지로만 매듭지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안도의 작업이기도 했으니까. 거짓 없는 감정과 그에 따른 행위는 공간이 주는 낯섦 안에서 한층 유연하고도 대담해질 수 있었고, 그런 여유 있는 자신을 만나는 일이 퍽 근사하게 다가왔던 것 일수도..
그때, 맥주가 있었다 | 미카 리싸넨·유하 타흐바나이덴 | 니케북스 역사를 빚은 유럽 맥주 이야기 두 역사학자가 풀어놓은 맥주 이야기 『그때, 맥주가 있었다』. 유럽 중세 초기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맥주와 관련하여 벌어졌던 다양한 사건, 그 속에 얽힌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불어 사건과 연관한 상표의 맥주 소개까지 덧붙이고 있어 한층 맥주에 대한 탐닉을 자극한다. 그야말로 맥주를 좋아하고 즐기는 이들이라면, 이 책에 담긴 모든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리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여러분을 즐거운 맥주 여행에 초대하려한다. 다 같이 잔을 들어 건배! - p.13 그때, 맥주가 있었다 - 미카 리싸넨.유하 타흐바나이넨 지음, 이상원.장혜경 옮김/니케북스
헌책방 기담 수집가 | 윤성근 | 프시케의숲 사연 있는 책을 찾아드립니다 수수료는 당신 삶의 이야기! 저자는 헌책방을 운영하며 사람들에게 의뢰받은 책을 찾아준다. 단, 그 책에 얽힌 사연을 수고비로 받고 있는데, 그것을 한데 묶은 것이 『헌책방 기담 수집가』이다.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 - 책을 찾기까지의 여정, 그 수고스러움 같은 것은 뒤로하고 - 매우 근사한 작업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러고는 이내 책들에 얽힌 사연들이 무척이나 궁금해져서 읽지 않고는 못 배겼음을 밝혀둬야겠다. 그렇게 한동안 책에 얽힌 사연을 마주하며, 그간의 내가 이런저런 책들 사이에서 느꼈던 어떤 마법과도 같았던 일이 한 낱 우연이나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연(緣)의 일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놀랍도록 시기적절하게 나타나 돌파구가 되어 준 몇몇 책들이 떠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 찰리 맥커시 | 상상의힘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놀라운 창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이따금 떠올린다. 과연 삶이란 무엇일까, 내가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혹시 놓치고 있는 게 있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찰리 매커시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에는 그와 같은 고민들로 골몰하는 우리 각자가 투영돼 있어 시선을 끈다. 그 가운데 서로에게 작은 용기를 건네는 모습 안에서 자연스레 지금 이 순간 내 자신에게 해주고픈 말들을 마주하게도 한다.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아끼고 신뢰하는 일의 소중함 역시도 깨닫게 한다. 마음을 데우는 글과 그림이 사랑스러운 책이 아닐 수 없다. “때때로 네게 들려오는 모든 말들이 미움에 가득 찬 말들이겠지만, 세상에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이 있어.”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