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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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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임솔아 외 | 문학동네 # 01. 「초파리 돌보기」, 임솔아 해피엔드 소설을 써달라는 원영의 말에 지유는 ‘소설은 소설일 뿐’(p.31)이라고 일축한다. 그러나 고심할 수밖에 없다. 다름에 아닌 엄마의 간곡한 부탁인 연유다. 자신을 잊고 살아온 그녀의 고단했던 삶을 외면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완성된 소설은 결과적으로 원영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초파리에게 로열젤리가 있었다면, 원영에게는 소중한 딸, 나아가 그녀가 선사해 준 해피엔드 소설이 있었으니까. 이원영은 다 나았고, 오래오래 행복하다. - p.38 # 02. 「저녁놀」, 김멜라 눈점과 먹점은 모모에게서 새로운 쓸모를 발견했다. 이로써 모모는 박스 안에서 벗어나 표표와 파파야와 함께 햇빛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지난날의 분노에 찬 성토는 힘을 잃었다. 자신들만의 ..
작별인사 | 김영하 | 복복서가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이분법을 허무는 김영하의 신비로운 지적 모험 “인간은 모든 것을 도구로만 여기고 그것의 활용을 고민한다. 나의 ‘용도’는 정확히 무엇일까?”(p.213) 골몰했던 철이의 고민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경계의 화두가 아닌가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 더욱이 인공지능이 일상 깊숙이 침투하면서 발생하게 될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하여 더 이상 대비하고 대처하기를 미룰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種) 이외의 다른 존재의 출현 - 그 안에서도 배제된 이들을 향한 우세한 이들의 무자비한 파괴와 폭력 - 을 한낱 상상 속의 장면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위기감 역시 느끼게 한다. 이렇게 된 이상, 선이가 말했던 ‘그냥 모여 있으면 힘이 되기도’(p.284) 한 우주정신을 발휘하는 ..
행성어 서점 | 김초엽 | 마음산책 탁월한 상상력, 온기 어린 시선 열네 편의 낯설고도 감각적인 이야기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이해해 보고자 하는 이들을 그린 열네 편의 짧은 소설을 만나보았다. 그 안에서 나는, 나와는 확연히 다른 존재들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감싸 안을 수 있을지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상상 너머의 낯선 세계에서 과연 나는 그들과 공존할 수 있을까. “나는 팔을 벌려 그 애를 안았어. 끝까지 안고 있었지. 비명을 참고 눈물을 참으며, 피부 표면을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생각하면서. (…) 그때 나는 불행히도 나에게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 - p.30, 31 「선인장 끌어안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앤드루 포터 | 문학동네 현대 미국 단편 문학의 가장 빛나는 성취 인간이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납득하고 이해하기를 바란다. 이 순간, 이 사람, 이 관계, 이 모든 일련의 상황을 납득하고 이해하기를, 때로는 이해받기를 바라 마지않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인간의 기본값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우리는 모든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더러는 자기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인간은 매 순간 이해하기를 멈추지 않는데, 그 불가능함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시도해 나가는 과정 안에서 삶은 안정적으로 진행 중이라는 것이 유독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마치 삶이 불가해한 것인 한,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기 라도 한 것처럼.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 실린 열 편, 그 안에 등장하고 ..
낭만적 은둔의 역사 | 데이비드 빈센트 | 더퀘스트 혼자인 시간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법 코로나 시대로 이전보다 혼자인 시간을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낭만적 은둔의 역사』는 한층 흥미롭게 다가온다. 수 세기 동안 혼자인 시간을 사람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보내왔는지, 앞서 살아간 이들을 통해 은둔의 역사,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까닭이다. 더욱이 그것은 곧 시간의 장벽을 넘어 오늘 우리 앞에 놓인 혼자인 시간에 대하여 생각하게 함으로써 ‘고독’을 말하고 있다. 요한 치머만은 “최고의 힘은 유연한 고독에 있다. 그것으로 타인의 존재도, 타인의 부재도 견딜 수 있다.”(p.324)고 했다. 고립이 아닌 “자기 회복과 자유롭고자 하는 경향”(p.323) 즉, 고독의 시간을 잘 가꿔나가고자 하는 데에 보다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하..
가면의 고백 | 미시마 유키오 | 문학동네 일상성을 칼로 베어버리는 강인한 낭만주의자가 써내려간 고백문학의 정수 입때껏 만나온 소설 안에서 작가의 자기 고백은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허구적 요소가 보태어지기 마련이지만 대개는 과거 일화를 바탕으로 한 사실적 성격을 띤다. 다만 미시마 유키오 소설의 특이점이 있다면, 가면이라는 수단을 통해 일반적 의미가 지니는 고백을 전복시키고 그 이면의 진실을 구하고자 하는 데에 있어 보인다. 그는 자신의 출생부터 성인이 된 시점에 이르기까지, 마음 깊숙이 관통하고 있는 무언가를 향한 몰두와 채근의 일화들을 특유의 날카로우면서도 감각적인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스스로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자기 노력인 동시에 본연의 자신에 가닿고자 하는 자기 나름의 탐구의 ..
빅터 프랭클 | 빅터 프랭클 | 특별한서재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빅터 프랭클의 인생과 철학 정신요법 제3 빈 학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를 창시한 빅터 프랭클의 자서전이다. 엄격하면서도 인자하셨던 부모님 아래,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추억한다. 이후 의사로서의 삶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 수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던 지난날을 담담히 회고한다. 무엇보다 수용소 안에서의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회상하며 ‘죽음이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p.17)는 깨달음이 로고테라피 창시의 초석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앞서 - 고통 속에서 좌절하기보다는 그럼에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노력의 끈을 놓지 않음으로써, 훗날 전세계 강연 여행을 가능하게 했던 - 그의 또 다른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 황보름 | 클레이하우스 서점이라는 공간에 있으면, 우린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니까요 한적한 골목 어딘가에 휴남동 서점이 있다고 상상해보았다. 이제 막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시각, 은은한 조명으로 주위를 밝히고 있는 이 공간을 과연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 그 안에서 각자의 일에 충실하며 조용하고도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때로는 서로를 향해 진솔하게 이야기꽃 피우는 사람들 사이에 슬며시 합류하고픈 마음이 분명 나를 그곳으로 이끌리라. 이와 같은 끌림은 영주와 민준이 용기와 진심을 다해 이끌어가고 있는 휴남동 서점을 한동안 지켜본 터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각자의 고민과 상처를 안고서, 그럼에도 녹록지 않은 세상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따듯한 공간이기에 한층 그들과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