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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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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 옌롄커 | 자음과모음 인간의 문명사적 재앙에 대한 고통스러운 사유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매혈을 하고, 대형 관 공장을 관리하면서 관을 팔며, 결혼 전에 죽은 이들의 음혼을 주선하는 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딩후이. 그런 아버지 탓에 복수심을 품은 사람이 마을 어귀에 놓은 독 묻은 토마토를 먹고 죽은 열두 살 난 샤오창. 매혈 운동의 우두머리인 큰 자식과 불륜을 저지른 둘째 아들에 불만을 품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매번 꾸짖고 달래며 중재하고자 동분서주인 딩후이의 아버지이자 샤오창의 할아버지인 딩수이양. 옐롄커 소설 『딩씨 마을의 꿈』은 이들 삼부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면서도 땅에 묻힌 소년 샤오창의 시선을 통해 전개되는 데에 한층 강렬한 비극성을 가진다. 딩씨 마을에 덮친 열병으로 파생된 모든 이야기는 물질적 풍요를 탐한..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이병률 | 달 사랑하고 있는 이들을 향한 시인의 따뜻한 축사 ‘우리는 지난 시간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랑을 해 왔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날은 또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랑을 하길 바라는가. 나를 둘러싼 이 세계, 여기저기에서 피어나고 지는 사랑이란 감정에 대하여 마주하는 일은 근사하고 아름다운 일이면서도 애잔함을 불러일으키는 쓸쓸한 일이기도 했다. 더욱이 지난 몇 년 팬데믹이라는 어둡고 긴 터널 안에서 사람을 몹시도 그리워한 일이 있는 우리에게 사람 없이 산다는 것이, 사랑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황량하게 하는가를 깨우치게도 했으므로 더욱더 소중하게 다가올 수밖에. 혼자가 혼자에게 | 이병률 “왜 혼자냐고요. 괜찮아서요.” 이 세계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일, 나는 그 비결을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 안에서..
체호프 단편선 | 안톤 체호프 | 민음사 단순한 유머를 넘어 우수 어린 서정적 미학을 창출해 낸 작품 선집 모순과 부조리에서 나온 삶의 비극성을 감싸 안는 따뜻한 리얼리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체호프 단편선』에 실린 열 편의 짧은 소설은 겉으로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한 지점에 맞닿아 있다. 이를테면 삶이 유발하는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극과 극을 보여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인간 존재가 — ‘떠난다’는 행위를 통하여 — 껴안고 있는 삶과 그것의 본질에 대하여 깊이 사유하는 것이다. 실로 우리는 어디론가 향하거나 자신이 죽음으로써 혹은 타인의 죽음을 목도함으로써 삶의 한 부분을 일단락 짓고, 나아가 그 전체에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생각했다. - p.31,..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 창비 미스터리 같은 한 남자가 헤쳐온 역사의 격랑 아버지가 죽고 문상 온 조문객들을 맞이하면서 딸은 아버지가 살아온 삶에 대하여 더듬어 본다. 살아온 나날에 비하면 고작 4년뿐인 젊은 날의 빨치산 활동이 제 자신은 물론 일가족의 삶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한 장본인이었다. 빨치산의 딸이었던 그녀 역시 피해자였고 사과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아버지가 걸어온 삶이 정녕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일이기만 했을까. 생전 아버지와 이런저런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외려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p.181)한 딸은 자신이 외면해온 아버지란 존재에 비로소 가닿는다. 그리고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이 바란 세상을 위해 몸 던져 애쓴 한 사람일 뿐이고, 이는 저마다 제 삶을 위해 분투해 온 모..
여우 8 | 조지 손더스 | 문학동네 사라져가는 숲과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인간의 말을 배운 여우가 전하는 위트 있는 경고! “좀 차캐지려고 노력카새요.”라는 여우 8의 충고에 잠시 멈칫했다. 좀 착해지라니…… 그렇다. 당혹스럽지만, 확실히 우리는 좀 착해질 필요가 있지 않은가. 얼마 전 한 tv 랭킹 쇼에서 인간이 배출하는 음식물 탓에 일 년 내내 먹이를 구할 수 있게 된 야생 흑곰들이 겨울잠을 자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여기에 기후 변화가 더해져 한겨울에도 체온 유지가 용이하게 돼 곰들의 동면 거부를 부추기고 있다고도 했다. 이에 마을로 내려온 곰들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된 사람들이 늘어나자 미국 캘리포니아 당국에서는 이들의 안락사를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라고도 덧붙였다. 원인 제공자는 명백히 인간임에도 곰에게 책임 전가를 하고 있..
루이와 젤리 | 엘렌 몽쟁 | 가톨릭출판사 국내 처음으로 소개되는 루이 마르탱과 젤리 마르탱 성인 이야기! 마르탱 부부는 소박한 생활 안에서도 성덕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두 사람도 젊은 시절에는 봉헌 생활을 꿈꾸었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데에서 성덕이 온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 나갔다. 그들은 삶이 주는 기쁨에 감사하고, 삶의 십자가를 짊어지며 평범한 삶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았다. 그리고 그분께 모든 걸 내어 맡기고 신뢰하였으며, 이웃에게도 헌신했다. 그들의 영성은 화려한 면모를 지닌 일반적 성인들과는 다른 특별한 평범함 속에 뿌리를 내렸다. - p.65, 66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 성녀 소화 데레사 작은 꽃, 작은 붓, 작은 길의 영성 나의 세례명 데레사. 유아 세례를 받았기에..
시녀 이야기 | 마거릿 애트우드 | 황금가지 전체주의 사회 속에 갇혀버린 한 여성의 독백을 통해 성과 권력의 어두운 관계를 파헤친 섬뜩한 디스토피아 소설 길리어드의 사람들은 어떠한 자유 의지 없이 계급에 따라 사회가 부여하는 한정적 역할에만 머물며 그것에 충실해야 한다. 더욱이 자신의 존재 가치는 오직 강요된 임무로써 증명받을 수 있기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한 개인이 철저하게 도구화되어야만 한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상당한 충격을 안긴다. 한마디로 길리어드는 끔찍했다. 스스로를 가리켜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면서 “우리는 다리 둘 달린 자궁에 불과하다. 성스러운 그릇이자 걸어다니는 성배(聖杯)다”(p.238)라고 했던 시녀 오브프레드의 체념 섞인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귓가를 맴돈다. 우리에겐 아직도…….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아직 ..
진짜 그런 책은 없는데요 | 젠 캠벨 | 현암사 오늘도 평화로운 작은 책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자 젠 캠벨이 영국 런던의 한 책방(리핑 얀스 서점)에서 일하며 마주한 엉뚱하고 황당한, 그러나 유쾌하기 그지없는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다. 앞서 발간된 『그런 책은 없는데요…』에 이은 두 번째 책방 에피소드인 셈이다. 더욱이 이번 책에는 다른 서점과 저자의 사인회 등 장소의 범위를 넓혀 보다 다양한 손님들과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오늘도 조용히 자신이 원하는 책을 신중히 고르고 있는 손님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서점 직원들을 당황하게 할 괴짜 손님들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그런 책은 없는데요… | 젠 캠벨 엉뚱한 손님들과 오늘도 평화로운 작은 책방 서점을 배경으로 직원과 손님 사이에 일어난 일화들을 엮은 책이다. 더욱이 이 이야기들이 저자가 영국 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