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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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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여름이 | 김연수 | 레제 이 삶은, 오직 꿈의 눈으로 바라볼 때 오롯하게 우리의 삶이 된다 김연수 작가가 낭독회를 위하여 쓴 스무 편의 짧은 이야기를 엮은 소설집 『너무나 많은 여름이』. 나는 “그들이 낮 동안 열심히 일해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밤의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내게 하는 것. 나는 그들이 모여서 듣는 내 이야기도 그런 것이 됐으면 싶었다”(p.297)는 소망을 담은 이야기들 안에서 우리가 걸어온 시간, 그리고 마주해 나가야 할 시간들에 대해 한참을 서성였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시기를 경험한 뒤의 일이기도 해서 보다 의미가 있었는데,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바로 그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p.298) 고도했던 작가의 말 역시 같은 맥락이었으리라 짐..
이토록 평범한 미래 | 김연수 | 문학동네 소설이 시간을 상상하는 여덟 편의 방식과 이야기가 우리 삶을 바꾸어내는 경이의 순간 우리는 과거에 대한 기억과 경험, 이를 바탕으로 터득한 현실의 체험이 외부 세계와 맞닿는 중에 아직 오지 않은 미지의 시간을 예감한다. 그렇게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그걸로는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삶이 단선적이지 않은 연유리라. 삶을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만 보아도 그렇다. 김연수 작가의 신간 소설집에 엮인 여덟 편이 그 좋은 예이다. ‘이야기’의 형태로 구현하는 삶, 그 안에서도 시간의 직선적 흐름에 구애되지 않는 방식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인식하고자 하는 이들과 조우하게 하는 까닭이다. 말하자면 자신과 외부 세계의 접점을 보다 능동적이면서도 다각적..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 문학동네 순하고 여린 것들로 북적대던 아름다운 시절이 끝나고 찾아온 적막 그 세상에서 끝내 버릴 수 없던 어떤 마음과 그 마음이 남긴 몇 줄의 시 지난날 기행이 걸어온 어둠길은 오늘에서야 한줄기 빛을 되찾는다. 시를 쓸 수 있었던 한여름 밤의 꿈과도 같았던 시절 이후, 끝없는 밤을 걷고 또 걸어야만 했던 그의 고행이 시대를 뛰어넘어 작가 김연수의 숭고한 손끝 작업을 통해 비로소 새날의 희망으로 가닿은 까닭이다. 대개 우리는 개인의 꿈을 좌초시키는 혹독하고도 암담한 현실, 그 안에서 인간은 무얼 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골몰하고는 한다. 그러니까 제각기 마주한 현실의 벽 앞에서 고민하고 아파하며 절망도 하는 것이다. 나는 시를 쓰고 싶었지만 쓸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 안에서 기행 그 자신이 바라고, 작가와 나를..
시절일기 | 김연수 | 레제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의 기록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일들이 곳곳에서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도 조금씩 자기 안에서 자라고 있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대면하는 일에 적잖이 두려움을 느낀다. 더욱이 그 안에서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수시로 자책하는 것이 요즘을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일 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서 자신의 자리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글 쓰는 행위를 통해 이 세계에 대하여 끊임없이 골몰해온 김연수 작가의 『시절일기』가 그 좋은 예다.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산문집은 치열하고도 처절한 고민의 흔적들이 문장이 되고 글이 되어 하나의 거대한 공감과 연대의 무기..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 마음산책 누군가 오래 본 문장, 누군가 오래 볼 문장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 이젠 조금 알 것도 같다. 아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렇게, 그냥 그 정도로만. 그럼, 다들 잘 지내시기를.’(p.239)이라 맺고 있는 문장의 구두점을, 나는 한참을 응시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청춘(靑春)에 고하는 이별사(離別辭)와도 같이 들렸으므로. 나의 청춘도, 당신의 청춘도 잘 지내시라는 짤막한 당부의 말이 담백하고도 담담했지만, 그 바람의 마음은 어쩐지 불어오는 바람처럼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그래서 오로지 피부결에 와닿아야지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어서 한층 적막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집 막내였던 녀석과 함께 했던 산책길을 혼자 거닐다가 그 언저리에 있는 벤치에 앉아 읽고 있던 참이었다. 문득 그 녀석..
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 컬처그라퍼 모든 게 끝났으니 진짜 여행은 이제부터 올여름은 비행기 티켓 창을 열어두고 한참을 골몰하다가 허무하게 닫기를 수 차례 반복하는 동안 저만치 물러간 느낌이다. 그런 나날의 분주하고도 집요하게 움직이던 나의 검지 손가락은 더위를 핑계 삼아 잠시 어디론가 떠나려는 속셈이 다분했다. 그런데 숨 막히던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그럭저럭 한 바람이 스치면서 더 이상 같은 이유로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기에는 멋쩍은 상황이 오고 말았다. 그렇게 흐지부지된 상황에서 집어 든 『언젠가, 아마도』. 김연수 작가가 4년에 걸쳐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에 연재한 글에 새로운 글 8편을 추가해 엮은 여행 산문집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행지의 각종 정보와 그곳에서의 체험담을 생생하게 적고 있는 여행기를 기대했다면..
꾿빠이, 이상 | 김연수 | 문학동네 "다만 무한한 어떤 것 앞에서는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하지,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애매해진다는 말입니다." 김연수 작가의 『꾿빠이, 이상』이 재판되었다는 소식 이후, 책장에 꽂아 놓은 것이 벌써 일 년이 훌쩍 지났다. 그러다 최근 웹서핑 중 우연히 이상의 부인이기도 했지만, 김환기의 부인이었던 변동림이었다가 김향안이 된 한 여인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이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김환기 역시 한국 추상 미술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 둘 사이에 이런 연결고리가 있는 줄은 알지 못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간 미뤄뒀던 『꾿빠이, 이상』을 읽게 됐다. 이상의 죽음 직후 만들어졌다는 데드마스크를 둘러싼 엇갈린 증언을 이야기 한 「데드마스크」, 철저하게..
원더보이 | 김연수 | 문학동네 기다려, 지금 너에게 달려갈게 # 이 우주에는 얼마나 많은 별들이 있을까요? 10000000000000000000000개의 별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어마어마한 0들이 나열된 별의 구체적 수를 마주 하자니, 내가 바라보는 하늘에선 도대체 그 많은 별들이 다 어디로 가버린 건지 궁금해지는 거다.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 볼 적이 있는데, 환한 달 옆으로 작게 반짝이는 별 하나만 발견해도 그날 밤은 운이 좋다 여길 정도니, 새삼 그 수가 놀라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전혀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딴 세계 얘기처럼. 어찌 됐든 그저 컴컴하기만 한 밤을 마주하는 일은 매우 슬펐다. 그러므로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이지, 모두 제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을 거라고 믿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었다...